[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피난열차 유감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솔직히 나 같은 속물에게 수화 김환기 화백의 이름은 비싼 작가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그림 10점 가운데 9점이 바로 김 화백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푸른색이 넘쳐 캔버스 밖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은 김 화백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이는 김 화백의 작품들이 현실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회화든 음악이든 추상예술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인 듯싶다. 그런데 김환기 화백의 그림 가운데 특별한 작품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발표한 <피난열차>라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얼굴도 표정도 없는 피난민들이 마치 성냥갑의 성냥개비들처럼 빽빽하게 열차에 타고 있다. 표정 없는 사람들은 어쩌면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피난민들의 마음이 아닐까 모르겠다.
경쟁사회를 피난열차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가장 먼저 열차에 탄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간다. 그 다음에 온 사람들은 열차 바닥에라도 앉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열차 지붕에 앉아 가야 한다. 그나마 사람이 적어 여유가 있으면 열차 지붕도 탈 만할 터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붕에 오르면 서로 밀고 당기고 부대끼면서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열차 지붕의 잔임함은 그렇게 내 옆 사람이 떨어질수록 나는 더 안전해진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열차 지붕에서 떨어지고 누가 살아남느냐는 경쟁, 요즘 우리 자영업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경쟁사회, 피난열차 잔인함에 비유
지붕서 옆사람 떨어져야 내가 안전
이재명 대선후보 음식점총량제 논란
선진국도 시행 불구 근본 해결책 아냐
열차 더 만들어 피난열차 타게 해야
고용 안정 위한 해고 총량제 더 필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안한 음식점 총량제를 두고 작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이런저런 비판들이 제기되자 이 후보는 그만큼 자영업이 어려우니 대책이 시급하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사회주의적 발상이나 북한에서나 가능하다는 투로 비판한 것은 옳지 않다. 외식사업 전문가인 백종원씨가 국회에서 증언한 것처럼 여러 선진국들에서 이미 비슷한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직업들이 이런저런 자격을 요구한다. 음식점 총량제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개인의 권리를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음식점을 하려는 이들이 제대로 준비과정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추게 하자는 뜻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 자영업이 처한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모르겠다. 비유하자면 이재명 후보의 제안은 열차 지붕에 올라탈 사람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떨어질 사람의 수도 줄여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대책은 더 많은 열차를 만들어 누구든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도 궁금해서 우리 동네에 음식점이 몇 개인지 세어 본 적이 있다. 버스 정류소에서 우리 집까지 불과 100m 남짓한 길에 치킨집만 열 곳이 넘었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토록 자영업이 많을까? 고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정리해고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이름의 ‘쉬운 해고’가 일상화되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정년을 채우기 전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음식점 총량제가 아니라 ‘해고 총량제’가 아닌가? 기업들은 경영상의 이유라는 변명을 하지만, 정말 그만큼 회사 사정이 어렵다면 당장 경영자들의 연봉부터 줄여야 옳다. 지난해 대기업 총수들의 평균 연봉은 33억 원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이는 무려 181억 원을 받았다. 직원을 해고할 때마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천명 만 명이든 간에 그 연봉만큼을 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에서 지급하도록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쉬운 해고’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