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에서 이주 아동·청소년으로 사는 것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준비로 분주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표면적으로는 거리 두기를 요구했지만,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공생(共生)만이 해법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함께 살아가기가 화두가 된 지금, 경제 활성화만을 위한 위드 코로나가 아닌, 재난 상황 속에서 취약해진 이들을 살피고 공존(共存)하기 위한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
작년 4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코로나19 장기화가 아동의 신체·정서·심리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주 아동, 빈곤 아동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요청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이주 아동·청소년들의 취약성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고, 이들에게 필요한 돌봄, 교육, 보호를 제공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었나.
코로나19 장기화로 건강 훼손 심각
한국 국적 없는 아동은 지원도 차별
부모 체류자격 때문 일상 배제 안 돼
동등한 돌봄과 교육 제도 개선 필요
이주 아동 환대하고 잘 자라게 하면
지방대학 위기·지역소멸 해법도 돼
작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문을 닫자 아동특별돌봄비, 비대면 학습지원비(미취학·초등학생 20만 원, 중학생 15만 원)를 지급했다. 이때 한국 국적이 없는 아동들은 제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감염병의 여파도 국적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확산했지만, 최소한의 보호·보장 장치는 국적을 따라 차별적이었다. 고의적 배제보다는 우리나라의 법·제도가 당연하게 따르는 국적 구분이 자연스럽게 적용된 결과였다. 대한민국의 법이 국민만 대상으로 하는 게 잘못됐나 물을 수 있다. 적어도 아동정책만큼은 잘못됐다. 국적과 무관하게 생명·생존권, 돌봄권, 교육권, 건강권 등 제반 아동의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1991년 이미 비준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외국인 아동은 약 14만 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아동의 16.9% 수준에 달한다. 있지만 존재감 없는 아이들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다. 그간 정부는 다양한 이주 아동·청소년 지원정책을 시행해 왔다. 교육부는 2006년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주 아동의 공교육 진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2021년 현재, 외국인 학생은 약 3만 명이다. 법무부 통계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많은 아동·청소년이 부모의 체류자격을 이유로, 이들을 지원할 교사와 체계가 없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디지만, 10여 년의 시간은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의 존재를 인식시켰고, 비대면 학습지원비가 외국인 학생에게는 지급되지 않자 교사, 지원 단체들이 나서서 교육청을 움직였다. 올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시 이주 아동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므로 동등하게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건강보험 미가입 이주 아동에게도 정부는 2005년부터 필수 예방접종 지원을 해 왔지만, 코로나19로 보건소 인력이 방역에 투입되면서 중단됐다. 감염병 시기,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주민등록증 제시를,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QR 체크인을, 백신접종 예약을 하기 위해 공인인증 등 수많은 등록을 요구받았다. 부모의 체류자격 때문에 미등록 상태가 된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배제와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부당한 혐오와 차별도 경험했을 것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섰다.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왔다. 그간 한국은 외국인 인력 활용, 유학생 유치 등 필요한 목적으로만 이주민을 바라보았을 뿐, 이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삶,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은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주 아동·청소년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특별대책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돌봄과 교육을 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현행 법·제도의 미비점을 개선해야 한다. 부모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아동의 체류 안정성을 보장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똑같이 이주 배경을 가진 다문화 아동·청소년인데도, 현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다수 지원서비스는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 가족(다문화가족)에게만 제공된다. 한국어 교육 포함 다양한 지원서비스를 이주 아동·청소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2019년 기준, 부산에 거주하는 이주 아동은 1만 명을 넘어섰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도시답게, 모든 아동의 안정적인 삶을 차별 없이 보장하기 위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싶어 하는 글로벌 도시 부산의 명성은, 화려한 건축물과 명소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주 아동들을 환대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포용의 가치가 도시 저변에 깔려 공존의 단단한 기반이 되는 것으로 획득된다.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하고, 시민으로서 삶을 계속 이어 간다면,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방대학 위기, 지역소멸 위험에 대한 해법도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