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요소수가 뭐길래…
이자영 경제부 해양수산팀장
‘(남해고속도로) 진영휴게소 부산 방향, 요소수 넣기 위해 1시간째. 고작 10L 넣기 위해서.’
지난 주말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가 전송됐다. 대형 화물차들의 대기 행렬 사진도 함께였다.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한 화물차주가 요소수를 넣기 위해 기다리다 답답한 마음을 전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항만 적체로 인한 선박 부족과 장치장 대란을 1년째 견뎌온 부산항. 이번에는 요소수 품귀라는 불똥이 튀었다. 화물운송 업계는 내년 4월 부산항 신항에 3개 선석(남컨 2-4단계 BCT)이 새로 개장하면 사상 최악의 장치장 부족 사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버티고 있던 차였다.
부산항 ‘컨’ 운송 화물차 ‘발등의 불’
SCR 불법 개조 ‘정관수술’ 문의까지
항만당국 “트럭은 관할 아냐” 뒷짐
정부 대처 늦으면 물류대란 우려도
“요소수 부족은 장치장 부족 문제와는 차원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요소수가 바닥나면 SCR(질소산화물 저감장치)가 장착된 경유차는 당장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항의 화물을 운송하는 대형 화물차 중 70%가량이 유로6(유럽연합이 도입한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 단계)가 적용된 2015년 이후 생산된 차량입니다. 이 차들이 멈추면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물류대란이 벌어질 겁니다.”
부산시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경제와 산업이 멈추는 국가적 재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는 요소수 수급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1~2주, 길어도 한 달 안에 부산항 물류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차주들은 SNS를 통해 전국 주유소 상황을 공유하며 재고가 있는 곳을 찾아 줄을 서거나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도로변에 있는 요소수 판매업체를 알음알음 찾고 있는 상황이다. 한 화물차주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는 차량당 딱 10L씩의 요소수만 넣어주고 있다”며 “부산항 신항 웅동 도로변 판매업체의 경우 가득 넣어주기는 하는데, 가격이 2배 이상 하니 마음대로 넣을 수 없는 처지다”고 전했다.
요소수를 필요로 하는 SCR가 환경규제에 맞추기 위해 장착된 것이다 보니, 유로6 적용 이전의 차량들은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운 역설적인 상황도 펼쳐진다. 오래된 차량을 운행하는 화물차주나 노후장비를 사용하는 부산항 북항 일부 터미널 운영사는 요소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경유차 운전자들이 요소수를 구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검색과 해외직구에까지 나서면서 이제는 전 국민이 요소수라는 단어를 습득할 정도가 됐다. 한 후배 기자는 “며칠 전 아내가 요소수가 뭐길래 쇼핑몰 검색어 1위냐고 물어봤다”며 “평소 요소수 넣을 일 없던 사람들까지도 이번 기회에 저절로 요소수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차량 운전자들은 SCR 불법 개조, 일명 ‘정관수술’ 문의까지 하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요소수 때문에 난리도 아니네요. 한 집안 생계가 달린 문제니, 불법이지만 SCR 정관수술업자 아시는 분 있음 연락 부탁드립니다. 경남 창원입니다’와 같은 글들이 실제로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SCR 불법 개조 비용도 적지 않다는 답글, SCR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비싼 부품에 속하기 때문에 향후 문제가 생길 경우 수리, 교체 비용도 적지 않다는 답글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부도 경유차의 SCR를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허용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암을 일으키는 초미세먼지의 원인이다. 요소수 품귀로 인해 SCR 불법 개조 등이 현실화할 경우 항만·도로의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이 무색해질 우려도 있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는 지난 5일 요소수 관련 영상회의를 열고, 뒤늦은 현황 파악에 나섰다. 야드 트랙터, 리치 스태커, 엠티 핸들러 같은 일부 항만장비도 요소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항만당국 측은 “부산항 내 요소수 필요 장비가 전체 경유 사용 장비 412대 중 33대로 많지 않다”거나 “트럭은 관할 범위가 아니다”는 등의 안일한 답변을 내놓아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청와대도 지난 5일 요소수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비서관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항만물류업계에서는 뒤늦게나마 정부가 호주, 베트남 등 수입처 다변화에 나선 데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가 이 사태를 최대한 빨리 수습해 업계에서 우려하는 물류대란, 부산항 운영 차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