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애그플레이션 공포
“장 보기 무섭고 식당 가기 겁난다.” 요즘 자주 들리는 말이다. 치솟는 생활 물가가 심상찮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한 건 9년 9개월 만이다.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외식 물가도 전년도보다 3.2%나 올랐다. 식자재 값이 오르니 식당들도 버티지 못하고 음식값 인상에 나서는 형국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농식품 가격이다. 빵과 곡물의 가격이 6.2%, 콩기름·참기름·옥수수기름 등에 쓰이는 식용유지는 8.4%나 뛰었다. 밀과 콩·옥수수는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우려한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말인데, 농산물 가격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던 곡물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애그플레이션은 크게 두 차례 지구촌을 휩쓸었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가 1차, 2011~2012년이 2차다.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바이오 연료 확보를 위한 농작물의 대량 소비, 육식 증가에 따른 가축 사료 수요의 확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곡물 수요 증가, 국제 유가 급등에 의한 곡물의 생산·유통 비용 상승, 국제 메이저 식량 회사와 투기자본의 가격 담합과 곡물 자원의 무기화 등이 원인이다.
10여 년 전 기억 속으로 사라진 애그플레이션이 올해 하반기 들어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지난 4일(현지시간) 발표한 10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33.2포인트로 2011년 7월 이후 최고치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옥수수·소맥·대두 등 3대 국제 곡물 가격은 50%나 치솟았다. 국제 곡물 가격은 4~7개월 뒤 국내 물가에 반영되고 수입 곡물 가격이 10% 오르면 전체 소비자물가는 0.39%가량 오른다고 한다. 곡물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국제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농산물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 압력은 선진·신흥국을 막론하고 심각한 문제다. 최악의 상황으로 식량 파동과 경제 파탄까지 거론된다. 그러잖아도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서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것이다. 물가 안정화 정책과 함께 식량 안보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곡물 수출국은 자국 재고량이 부족하면 언제든 곳간을 걸어 잠근다. 농산물 비축·관리를 위한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발 빠른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