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 밀어붙이던 온타리오주, 백기 들고 선거서도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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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다] ⑧ 캐나다의 시민 불복종 운동

2016년 11월 캐나다 토론토 퀸즈파크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온타리오 각지의 주민들이 폐교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 만화는 겁에 질린 어린이들이 주의회 의사당에서 달아나는 것을 묘사하는 만평으로 학교 통폐합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OAASC 페이스북 캡처

캐나다의 면적은 998만 4670㎢로 한반도의 46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3800만 명을 조금 넘어 오히려 한국보다 작다. 특히 기후 특성상 추운 북쪽보다는 비교적 남쪽인 미국의 접경 지역에 인구가 몰려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도시의 작은학교를 둘러싼 통폐합 문제가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였다. 이 문제는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가 속해 있는 온타리오주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학교 통폐합 관련 갈등은 2017년 절정에 달했다. 주정부가 교육재정 절감 차원에서 학교 수백 개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지역사회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절박감을 안고 교육 불평등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는 결국 온타리오주의 선거에도 영향을 끼쳤다. 온타리오주의 사례는 내년 교육감 선거를 앞둔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주정부, 작은학교 운영예산 감축
지역 여론 무시 소도시 불리하게
통폐합 가이드라인 불공정 변경
시민들, 주의회 앞서 대규모 시위
주정부 폐교정책 유예 이끌어
폐교 주도 자유당, 선거서도 져

■소도시에 불공정한 기준

온타리오주 또한 저출산의 영향 탓에 지속적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했다. 온타리오주의 33개 교육청(District School Board) 소속 학교의 학생들은 2002년 139만 3148명에서 2006년 134만 2163명, 2016년 132만 1784명까지 줄었다. 15년 사이에 7만 1364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교육재정 균형을 이유로 대대적인 학교 통폐합 작업에 돌입한다.

우선 주정부는 2015년부터 지역 교육청이 작은학교 운영을 포기하도록 예산 운영을 매우 불리하게 만들었다. 교육 예산이 학생 등록 수에 따라 지급되도록 결정하다 보니, 시골의 작은학교는 예산을 적게 받아 교사 인건비나 난방, 조명 등 유지관리 비용 부문에서 애로 사항이 많았다. 게다가 학교 통폐합 가이드 라인 또한 지역사회에 매우 불리하게 변경됐다. 이전에는 학교 통폐합 때 폐교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반영하도록 했으나 새 가이드라인은 이를 무시했다.

교육 시민단체 ‘교육을 위한 시민들(Education for People)’의 애니 키더 이사는 “과거에는 학교 통폐합 때 지역 경제가 얼마나 타격을 입는지 살펴야 했으나, 지금은 전혀 관계가 없는 항목이 됐다”면서 “예산 부문에서도 작은학교는 학생 수에 따른 기금 외에 추가로 예산을 받을 수 있었지만, 주정부가 이를 점진적으로 거둬가기 시작했은데, 확실히 소도시에 불공정한 기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온타리오주 미치 헌터 전 교육부장관은 “학교 통폐합이 교육청 결정으로 이뤄질 것이며, 숫자도 임의적일 것이다”고 말하면서도 300여 개 학교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600개의 학교가 폐교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2017년 4월 교육을 위한 시민들을 내 놓은 자료를 보면 교육청 34곳에서 2020년까지 121개 학교(학생 3만 3000명) 폐교를 권고했고, 4월 30일에는 68개 학교에 대한 폐교 여부 투표가 예정돼 있었다.

온타리오 주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제외한 제3 외국어 교육까지 여파가 미쳤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수잔 리 씨는 토론토교육청(TDSB) 소속 한국어 교사다. 그는 당시 한국어 수업도 위기를 맞았던 상황을 회고했다. 토론토교육청 또한 학생 수 감소 이유로 고교 언어프로그램 중 제3 외국어를 폐지하려 했는데 한국어 수업도 결국 2016년 중단됐다. 리 교사는 “이 일 때문에 교포 사회까지 들썩였다”면서 “한인회 등에서 온타리오 주의회에 한국어 교육 부활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교육청 뒤에 숨은 정부, 화를 자초

당시 온타리오 주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소도시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일부 학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정부는 학교의 다양한 용도를 무시했다. 게다가 학교가 하나뿐인 지역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왕복 2~3시간을 통학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주정부는 “학교의 통폐합은 오로지 교육청이 결정한다”고 발뺌하면서 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연방제 국가인 캐나다는 주정부에 교육부장관을 두고 있으며 교육청은 주정부에서 예산을 받아간다. 교육정책 관련 모든 책임과 권한도 주 수상에게 있다. 주정부가 교육 예산을 쥐고 있는데, 정작 책임을 교육청으로 떠넘긴 셈이다.

온타리오 각지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학교 폐쇄를 반대하는 온타리오 연합(OAASC)’ 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2016년 11월과 2017년 4월 온타리오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OAASC에 참가했던 주디 킬링 씨는 “윈저와 오언사운드, 배리 등 온타리오의 다양한 지역에서 학교 통폐합 반대를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보보수당(PC)과 신민당(NDP) 등 야당도 자유당(Liberal) 주정부의 불투명한 학교통폐합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7일에 열린 온타리오 주의회 주정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은 학교 통폐합 이슈 관련 캐슬린 윈 전 수상을 상대로 집요하게 따져묻고, 해당 정책에 대한 ‘잠정 유예(moratorium)’를 요구했다.

결국 미치 헌터 전 교육부장관은 그해 7월 학교 통폐합 정책 유예를 선언하고 말았다. 해당 이슈는 2018년 열린 선거까지 이어지면서 집권 자유당이 패배하고, 진보보수당 주정부가 새로 출범했다. 현 주정부도 학교 통폐합 정책 유예를 유지하고 있다. 애니 키더 이사는 “자유당 주정부가 주의회에서 소도시 의석이 없다 보니 해당 지역 학교 통폐합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성토가 나왔다”며 “이는 지역사회에 큰 실망감을 안겨줬고 이듬해 선거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토론토 학교의 한국어 교육도 2017년에 파일럿 프로그램 형태로 되살아났다. 당시 60명 규모로 2개 반이 개설됐는데, 놀랍게도 130명이 몰리면서 나머지 70명은 돌려보내야만 했다. 수잔 리 교사는 “캐나다 학교도 교육뿐만 아니라 돌봄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소득층도 학교를 많이 의지하고 있다”면서 “단순 학생 수 잣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토=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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