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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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우리 가족은 자동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데 자가용 대신 자전거 두 대를 소유하고 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무료 와이파이까지 제공하는 버스와 지하철이 있으므로 이동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갖게 된다면 그동안 이동 시간에 하던 많은 일들(수면, 독서, 영상 시청 등)을 할 수 없게 될 테니, 차가 없는 편이 나로서는 시간을 버는 일 같기도 하다.

자동차가 없으면 여행 다니기가 어려울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대중교통으로 하는 여행은 꽤나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얼마 전에는 가족들과 경주에 갔었는데, 부전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소설책을 읽다보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경주에 도착해서는 자전거 세 대를 대여해서 타고 다녔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준 그림지도를 보며 열심히 페달을 굴려 찾아다닌 첨성대, 계림, 분황사, 동궁과 월지의 가을은 아이의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이네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시간 활용성과 낭만적인 이동 방식,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애초에 차를 사지 않기로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조금이나마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해보자는 데에도 있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과 자전거, 그리고 두 발을 이용해 이동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작게나마 노력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차를 사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보통 얼버무리고 만다. 환경 이야기를 하기엔 일상생활 속 내 모습에 부끄러운 점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의 시작과 함께 과학저널 에서는 기후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응답자의 88%가 현재 전 세계가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응답자의 82%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죽기 전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굳이 기후과학자들의 견해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지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이다.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과 기후 변화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 당장도 문제이지만, 나보다 더 긴 미래를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쩐지 큰 죄를 지은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모르는 척 눈을 감아버린다. 순간의 편리함을 위해 자기변명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그런 내게 내부 검열자가 말한다. ‘자가용만 없을 뿐, 여름엔 에어컨 실컷 틀잖아. 일회용품도 쓰잖아. 종이도 물도 낭비했잖아.’ 나는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어쩔 수 없었다고….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생활에서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는 일은 노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차를 사지 않기로 결심한 일처럼 말이다. 최근 유명 커피 브랜드에서는 친환경 메시지 전달의 일환으로 한정판 다회용 컵을 고객에게 제공했는데, 그 플라스틱 컵을 갖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커피숍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을 내어 줄을 서는 일도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환경을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심으로 행동하려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하고, 자신의 욕구와 정반대되는 지점이라 해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이네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 마냥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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