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너무는 너무하지 않는다
권정일(1961~ )
너무 쓴 사랑 너무 아픈 상처 너무 빨간 사과…… 너무 즐거운 너무 쓸쓸한 너무 시린 너무 너무 너무한 즐거워 쓸쓸해 사랑해…… 너무가 뱉어 내는 말이 얼마나 될까 너무가 너무를 너무하다 사과 한입 베어 물고 너무한다 미안해 아파 시려 그러다가 너무해서 너무한 줄 모르는 너무가 범람하면 마음은 어디로 갈까 가령, 없어 없음이 없어 없음이 너무 없어 너무 없어 하다 보면 없음이란 이 좋은 말이 부질없이 부질없다 부질없다는 것이 정확해질 때까지 숨 몰아쉬지 않아도 수백만 번 너무하지 않아도 명랑한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간다 우리는 너무 너무너무 쉽게 도대체 너무한다 정말 매우 여전히 훨씬 진짜 아주…… 이런 쫀득한 우리가 되어 볼까 어느새 간절해져서 다시 그윽해져서 그야말로 정말이지 진짜가 되어 눈물겨울까
-시집 (2018) 중에서-
강조하지 않으면 의사전달이 잘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반복하고 강조해서 말한다는 건 화자가 강박관념 상태임을 뜻하지만, 사회 전체가 욕망의 아수라임을 감안해 보면 사회 자체가 강박관념에 빠져서 욕망의 전달에 반복 화법과 강조 화법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반복되는 선전에 소비자가 충동구매를 느끼듯이 반복되는 일상에 매 순간 강조되는 욕망이 삶을 쫓기듯 몰아가고 있다.
지식이나 지혜보다는 넘치는 정보에 좌우되는 SNS 문화도 강박사회를 만드는 큰 요인이지만 인류의 먼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의 편안한 의식주에 매달리는 과도한 물질문명이 우리를 더욱 더 강박사회로 내모는 원인일 것이다. 강박사회를 향한 기대치에 눌려서 더욱 쓸쓸해진 일상. 그 좋은 없음이란 단어도 부질없게 되는 너무한 요즈음 세상.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