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가야사 핵심 지식·정보 담아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정은영
는 약 520년간 존재한 가야사의 윤곽을 선명하게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여행기다. 가야 땅에 대한 이야기, 가야 유물 박물관, 가야사 사람들, 가야사 핵심 지식과 정보 등을 평이하나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써내리고 있다. 저자는 광주 출신인데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다녔고,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고시에 붙어서 행정공무원으로 18년간 국무총리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일해왔단다. 저자는 가야의 가치를 ‘다양성과 공존, 통합과 개방성’으로 본다.
유적지 얘기·유물 박물관 등 상세 소개
다양성·공존·통합·개방성으로 가야 조명
가야 땅 중에서 김해 부산 함안 고성 고령은 금관·아라·소·대가야라는 이름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문장이 보인다. ‘고령의 지산동 고분이 산의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라면, 함안의 말이산 고분은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을 걷는 것 같다. 김해의 대성동 고분과 부산의 복천동 고분은 잘 꾸며진 공원을 걷는 느낌이다. 이에 비해 송학동 고분은 막막한 사막을 고독과 함께 걷는 기분이다.… 고독한 자여, 복 있으라. 송학동이 그대를 축복하리라.’ 가야사에 대한 감성이 묻어나고 역사가 드러난다. 3세기 초 포상팔국의 전쟁이 있었다. 고성 소가야를 중심으로 8개 소국이 김해 가야국의 해상무역 독점에 맞서 저항한 전쟁이다. 가야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가야사 중 가장 최근에 드러난 남원 장수 순천의 가야 이야기는 흥미롭다. 5~6세기 가야는 백두대간을 넘어 남원 장수 순천에까지 세력을 펼쳤다. 후기 가야는 낙동강 쪽이 신라 세력권으로 포섭되면서 중국이나 왜와 무역을 하기 위해 하동과 섬진강 수계를 확보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운봉고원의 남원 가야는 월산리 두락리 유곡리에 고분을 뿌려놓았고, 진안고원의 장수 가야는 동촌리 백화산 삼고리 노하리에 고분을 뿌려놓았다. 동촌리 고분은 국가 사적이다. 순천의 경우 운평리 고분이 대표적인데 순천 가야는 짧고 굵게 100년 역사를 남겼다고 한다.
가야 사람으로 수로와 황옥, 창녕 송현이, 대성동 57호분 순장녀, 구형왕, 우륵,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도 펼친다. 송현이는 6세기 창녕 비화가야의 송현동 15호분에 순장자로 묻힌 16세 소녀다. 창녕박물관에 이 소녀 모습이 모형으로 복원돼 있다. 대성동 57호분 순장녀들은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가야에 여전사들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거다. 우리 역사의 아마조네스라는 거다.
가야는 애초 부산과 경남·북에 있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호남까지 세력을 펼쳤던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더 넓다. 가야가 품은 세계는 한반도를 넘어 중국 북방 서역 왜에 이르기까지 광활하다. 북방과 남방을 아울러 교류했던 가야의 개방성과 포용성, 국제성은 지금도 유효한 문화자산이라는 거다. 고대 일본사는 가야와의 긴밀한 교류관계를 통해 형성돼 갔다. 누가 더 지배적이고 더 잘 낫다는 것이 아니라 한일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가야에 있다는 거다. 정은영 글·그림/율리시즈/348쪽/1만 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