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빛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다각도로 다뤄
빛의 얼굴들/조수민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한다. “그 봐, 다 조명빨이야”라고.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이자 조명디자이너인 제니퍼 팁턴은 “사람들의 99%는 빛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100%는 빛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빛을 별로 의식하며 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빛의 영향을 받고 있다.
만약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암흑이 떠오르겠지만, 빛의 부재는 단순한 어둠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사물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공간·사회로 범위 넓혀 방향 제시
빛 공해 등 부정적 이면 다양하게 설명
네 방향 창이 가진 장점·특징도 알려줘
더 나은 삶을 위한 빛의 중요성 역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빛이 끊임없이 반사하고 투과하고 굴절하고 산란하며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중 눈으로 들어온 빛으로 우리는 글을 읽고, 사물을 보고, 세상을 인지한다. 빛이야말로 공간, 제품, 예술, 삶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빛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거나 현 사회의 ‘부족한 빛 환경’에 대해 다룬 책은 찾기 힘들다. 은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 그리고 사회로 범위를 넓혀 가며 빛을 다각도로 비춘다. 그리고 빛 공해, 생태계 파괴 등 인간이 만든 빛의 이면을 조명하며 우리가 어떤 빛을 만들어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서구 유럽에서는 형광등을 ‘작업등’의 용도로 인식해 병원, 학교 등에만 사용해 왔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한국 주거의 조명을 ‘병원 같은 조명’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문화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각 공간에 맞는 조명이나 자연의 빛과 색온도에 적응하는 사람의 몸을 생각한 빛 환경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침대에 누우면 내 시야 정면에 위치하게 되는 방 등은 침실에 설치된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하지 못한 조명 기구라는 것이다. 이렇듯 좋은 빛 환경을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의 시선’이다.
공간을 통해 동서남북, 네 방향의 창이 가진 장점과 특징도 알려준다. 남쪽 창은 가장 풍부한 빛을 들이는 창이다. 하지만 대비되는 실내 안쪽은 역으로 더 어두워 보인다. 서쪽으로 난 창은 태양이 낮은 고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실내 깊숙한 곳까지 빛이 다다르면서 따뜻하고 아늑한 감성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북쪽 창은 부드럽고 균일한 빛이 일정하게 들어와 그림자에 민감한 화가들에게 좋은 작업 환경을 만들어 줘 ‘예술가의 창’으로 불린다. 아침의 태양이 식어 있는 집 안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건 동쪽 창이다.
빛의 확장은 사회로 이어진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의 빛은 우리 공간을 비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실내조명이 공간의 빛이 되어 준다면, 각자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우리가 사는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 된다고 말한다.
빛의 장점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인공조명에 노출될 경우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낮은 색온도의 조명만 비추는 실내에서 태양 빛을 보지 못하고 낮 시간에 반복적으로 일하는 백화점의 직원들은 주광의 푸른빛을 받지 못해 신체적, 감성적 활력이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인공조명은 인간의 건강만 해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척추동물의 약 30퍼센트, 무척추동물의 약 60퍼센트 이상이 야행성인데, 주로 달빛으로 방향을 탐지하는 벌레나 동물에게 인공조명은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로 수많은 곤충과 새들이 비행 중에 길을 잃고 헤맨다. 강한 인공조명에 노출돼 시각 능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지금, 우리는 인공조명이 만든 이러한 결과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국 시카고는 봄·가을이면 500만 마리의 철새가 도시를 지나갈 정도로 새의 이동 경로 한복판에 위치한다. 이 도시에 불을 밝힌 높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철새들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거나 지칠 때까지 건물 주위를 빙빙 돌며 이동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정도가 심각해져 매일 아침 건물 관리인들이 지붕에서 죽은 새를 삽으로 퍼내야 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카고는 절전 프로그램을 계획해 철새가 이동하는 시기에는 외부 조명을 끄고, 차양을 설치하고, 실내조명을 최대한 낮춰 철새의 사망률을 80% 가까이 줄였다.
좋은 빛과 공간은 단순히 빛의 양으로만 결정될 수 없다. 그보다 그 공간을 언제, 어떻게, 어떠한 용도로 사용할지에 대해 이해한 빛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을 만들 것이다. 빛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좀 더 좋은 빛들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조수민 지음/을유문화사/308쪽/1만 6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