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도 생트집’ 잡으며 한·미·일 공동회견 깨트렸다
일본이 우리나라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에 항의하며 중요한 외교적 행사를 뒤엎는 일이 빚어졌다. 최근 중의원 선거로 지지세를 재확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집권 자민당이 노골적으로 영유권 분쟁 지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우클릭’ 성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는 말이 나온다.
‘경찰청장 독도 방문’ 빌미로
외교차관 공동회견 돌연 불참
자민당 체제 ‘우클릭’ 강화 의도
셔먼 美 부장관만 발언자로 나서
“일본 외교 결례 지나쳤다” 지적
일본은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회견에 돌연 불참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이번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를 둘러싼 사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결국 이날 기자회견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만 발언자로 나선 가운데 열렸다. 일본이 말하는 독도를 둘러싼 사안은 앞서 지난 16일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말한다. 지난 16일 김 청장은 헬기를 이용해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하고 독도 경비대원 등을 격려했다. 이날 일본의 불참으로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3국 공조를 과시하려던 미국의 체면도 구겨졌다.
일본이 대통령이 아닌 경찰청장급의 독도 방문을 빌미로 국제무대에서 파열음을 냈다는 것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대내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10월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도 독도를 방문해 경비대원과 식사를 했지만, 한·일 간 외교 이슈로 부상하지 않았다. 반면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 방문을 했을 때는 일본 정치권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주장이 나왔고, 주 히로시마 한국총영사관에는 벽돌이 투척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영유권 분쟁을 통해 극우 노선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독도에 분쟁 지역 이미지를 덧칠하기 위한 일종의 선전이라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은 지난달 중의원 선거 등을 준비하면서 독도 영유권,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특히 자민당은 2012년 12월 재집권 후 독도가 자국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교과서에 싣거나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하는 등 한국의 영토 주권과 대립하는 방향으로 교육 제도를 개편했다.
더불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대립이 격렬해지면서 일본 내에서는 영토 관련 문제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실제 이같은 주장을 내세운 자민당은 지난달 총선에서 예상 외 단독 과반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앞서 2009년 강 청장 방문 당시에는 옛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출범한 직후였다. 자민당은 야당으로 전락해 있었다.
외교가에서는 ‘독도 몽니’ 부리며 다른 나라와의 공동 외교 행사에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한 일본의 외교 결례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한국, 일본과 건설적인 3자 협의를 마쳤으며 종전선언에 대한 협의도 매주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동 회견이 돌연 무산되면서 성과에 대한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온다. 셔먼 부장관은 “한동안 그랬듯이 일본과 한국 사이에 해결돼야 할 일부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일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