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김종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만큼 별명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그중 자타공인이 ‘여의도의 포레스트 검프’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달리기를 시작해 참 열심히 뛴다. 공교롭게도 지나간 곳은 모두 역사의 현장이었다. 김종인은 초대 대법원장이자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한 김병로의 손자다. 20대에 할아버지의 비서로 시작해 반세기 넘는 정치 인생의 길목마다 중요한 순간과 인물이 많았다. 지난 1월 한 방송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결국 국민의힘으로 돌아왔고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대선을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승리만 안겨 주고 다시 떠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시중에 떠도는 ‘김종인=딕 체니’론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관계처럼 될 거라는 이야기다. 딕 체니는 사상 최강의 부통령이었다. 부시는 얼굴마담이고 진짜 대통령이 딕 체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상왕 정치’니 ‘흥선대원군’이라는 평가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바이스’가 부시 대통령과 실세 딕 체니의 관계를 잘 다뤘다.
회고록 에는 김 위원장이 롤모델로 여기는 정치인 두 명이 등장한다. 첫 번째가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다. “역사가들은 독일제국 초반부를 ‘비스마르크 시대’라고 부른다. 황제의 이름을 빌려 ‘빌헬름 1세 시대’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빌헬름 1세 역시 대단한 인물이다. 황제의 말조차 잘 듣지 않는 비스마르크를 내내 옆에 두고 썼기 때문이다.” 그의 자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두 번째가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다. 닉슨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상대편 후보의 총참모장이었던 키신저를 찾아가 미국을 위해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단다.
키신저는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보다 더 많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뭔가요?”라는 유도 질문에 넘어가 고생한 적이 있다. 그는 “카우보이처럼 나는 항상 혼자서 행동한다”라고 대답해 닉슨 대통령이 폭발하게 만들었다. 1923년생으로 곧 100세를 맞는 키신저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종인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태어나도록 한 책임으로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고 스스로 고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인지….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