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오페라와 부산
디지털 에디터
혁신이 구가되는 시대다. 변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탄생한 지 400년이 넘은 올드 장르 오페라도 혁신을 거듭한 덕분에 아직도 열성 팬덤을 거느린다.
오페라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깬 사례라면 오스트리아 휴양 도시 브레겐츠가 떠오른다. 수상 무대에서 오페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공연은 실내 극장이 아닌, 보덴호 물 위에 떠 있는 가설 무대에서 이뤄진다. 축제 기간에 인구의 10배가 넘는 30만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여름 두 달 간의 공연을 위해 거대한 수상 구조물이 건조되고 2년마다 철거되는 과정 자체가 스펙터클이다. 지금 축제 홈페이지 현장 웹캠은 다음 시즌 무대를 건조하는 거대한 타워 크레인을 비춘다.
파격적인 무대, 자국어 공연…
늙은 오페라, 혁신으로 생명력
전 세계 극장은 차별화 승부수
북항에 들어설 부산 오페라하우스
아류 아닌 부산 특색 구현해야
문화의 상전벽해 견인차될 것
브레겐츠는 도전의 무대다. 앞선 시즌(2019~2020) 에 질다 역으로 출연한 멜리사 프티는 고상한 소프라노의 고정 관념을 깼다. 열기구에 매달린 채 무려 90미터 상공까지 올라가 거센 바람을 맞으며 천공의 아리아를 열창한 덕분에 찬사를 받았다. 이 공연으로 프티는 소프라노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드레스 코드나 엄숙미와는 거리가 먼 창의적인 무대, 색다른 연출이 늙은 오페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다음에 어떤 장관이 펼쳐질까, 하는 설렘! 다른 극장과의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다.
독일 베를린에는 오페라 극장이 무려 3개나 있다. 국립 오페라 극장인 베를린 슈타츠오퍼(Staatsoper)가 동독 지역에 넘어가는 바람에 서독 정부는 현대적인 도이체오퍼(Deutscheoper) 극장을 지어 맞섰다. 자존심 대결이 빚어낸 두 개의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통일 후 막대한 운영비로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당국이 통합을 시도했다가 예술계의 거센 반발로 각자 개성을 추구하기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런 측면에서 베를린 코뮈세오퍼(Komischeoper)는 서민 극장을 추구한다. 독일어로만 무대에 올린다. 이탈리아어 원작도 독일어로 번안해 공연하는 것이다.
런던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로열오페라하우스(ROH)가 있다. 그런데 역시 런던에 있는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하우스(ENO)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모두 영어를 고수한다. ENO가 자국어로 번역된 오페라를 고집하는 까닭은 “(영어 모국어)관객이 작품에 더 몰입하게 하려고”다. 문턱 낮은 오페라로 일반 시민에 다가가겠다는 차별화 전략이다.
오페라 프로덕션으로 세계 최정상급에 서 있는 ROH는 실은 수준 높은 발레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전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 중 유독 ROH와 프랑스 파리의 국립 오페라 극장(가르니에)은 공연 무대의 반 이상을 발레에 할애한다. 발레와 오페라는 일란성쌍생아처럼 같은 원작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고, 또 오페라 중간에 발레가 삽입되는 것도 흔하다.
낭만 발레의 전성기가 꽃핀 파리 오페라 애호가들은 발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다른 곳에서 이미 초연된 작품이라도 파리 무대에 올리는 조건으로 발레 장면을 삽입해 개작할 것을 요구해 자존심 강한 작곡가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발레가 삽입된 ‘파리 버전’이 드물지 않은 까닭이다. 이는 가르니에 무대를 가르니에답게 만드는 차별화된 지점이기도 하다.
뉴욕 메트폴리탄 오페라하우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디지털 전환의 선구자가 됐다.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통해 VOD와 실시간 중계 공연의 지평을 개척했다.
오페라는 성악 기교와 오케스트레이션만 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춤과 문학은 물론 연극과 미술이 한데 모여 만드는 종합적인 예술이다. 그 꼭짓점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문화 역량에 대한 자부심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해외에 갈 기회가 있으면 미술관, 박물관과 함께 오페라하우스를 찾곤 했다.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인 웅장한 건축물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이제 부산도 오페라하우스 시대를 맞이한다. 북항 재개발 1단계 핵심 시설이 바로 오페라 극장이다. 전쟁의 상흔과 고도 성장의 영광이 겹치는 북항 부지에 부산 문화의 중흥을 이끌 오페라 극장이 지어지는 게 뜻깊다.
부산 오페라 극장에서 앞으로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까? 당연히 부산 시민에게 기대와 설렘을 주는 문화 시설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럴려면 부산만의 특색이 있는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봐도 “부산답다”는 평을 받을 수 있는 공연장. 부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부산 색깔의 오페라 작품. 부산 문화의 상전벽해로 가는 해답이 거기에 있다. 이미 성공한 다른 곳을 베껴 아류가 된다면 길을 잃을 뿐이다.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