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미의 문화본색] ‘부산행’과 문화도시
문화부 기자
영화 ‘부산행’(2016·Train to Busan)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한다. 1000만 영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웰메이드 한국형 좀비물’로 전 세계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17일(현지시각) 미국 영화산업 전문 온라인 매체 ‘데드라인’에 따르면 배경을 미국으로 옮긴 ‘부산행’의 제목은 ‘Last Train to New York’(뉴욕행 마지막 열차)으로 인도네시아 출신의 티모 타잔토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영화 ‘부산행’ 제목에 ‘부산’이 들어 있어서 당시 부산 홍보에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실제로 2019년 ‘부산영화 미래보고서’ 시즌 1 기획 취재를 위해 미국 할리우드를 방문했을 때 질문 공세를 받았던 일이 기억난다. 기자가 “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취재차 만난 미국 영화산업 관계자마다 “영화 ‘부산행’을 아주 재밌게 봤다” “‘부산행 2’는 언제 나오느냐”고 열렬하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잘 만든 문화 콘텐츠가 도시 이미지 상승과 홍보까지 실속있게 챙긴 예다. 유행이 빠른 한국인 만큼 취재 당시 이미 3년 전 개봉 영화였던 ‘부산행’에 대한 질문을 받아 의아했던 것도 같다. 되짚어보니 그만큼 콘텐츠의 힘이 강력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 브랜드 이미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이 ‘영화도시’인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문화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공연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산은 제2의 도시지만 똑같은 출연진이 같은 기획 공연을 해도 인근 도시인 대구나 창원보다 표가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2년 뒤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아트센터가 들어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하드웨어만 갖추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공연장만 양산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침 15일부터 (재)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를 공개 모집하기 시작했다. 부산문화회관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리더십의 부재, 반복되는 노사갈등, 이를 중재하지 못하는 부산시 문화행정의 빈약함이 떠오른다. 현재 본부장 대행 체재인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영화의전당,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임기가 차례로 마무리되면서 곧 새 수장이 부산 문화기획과 정책을 담당하게 된다.
부산 문화 공공기관장들이 ‘부산행’ 같은 웰메이드 콘텐츠까지 내놓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콘텐츠 제작은 민간이 공공기관보다 더 잘하는 영역이다. 내년에는 민간 기획자와 아티스트가 마음껏 부산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일을 잘하는 문화기관 대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