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진 자도 국민이다
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올해 초과세수로 19조 원이 예상되면서 정치권이 시끄럽다. 정부와 여야는 초과세수의 사용처를 놓고서 연일 힘겨루기에 바쁘다.
초과세수는 애초 정부가 전망한 세입예산보다 많은 조세수입을 뜻한다. 정부는 올해 2차 추경 당시 세입전망치에 비해 19조 원이 더 걷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9조 원 초과세수에 정치권 몸살
급증 재산세·종부세에 고충 커
대출 내 세금 내는 상황도 발생
과도한 진영논리… 합리적 판단 해쳐
초과세수의 약 40%인 7조 6000억 원은 지방자치단체에 내줘야 한다. 또 1조 4000억 원은 소상공인 손실보상 재원 부족분을 채우는 데 쓰일 전망이다. 여행·숙박업 등 손실보상 제외 업종 소상공인에 대한 추가 지원책에도 재원이 투입된다. 나머지 8조 원대 초과세수 중 일부는 나랏빚을 갚는 데 활용된다.
일부에선 이 같은 세수 초과를 놓고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7일 초과세수를 “10조 원대”라고 낮춰 얘기했다가 정치권의 국정조사 언급에 몇시간만에 번복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초과세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기재부가 고의로 전망치를 숨기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공무원들이야 “착각했다”고 사과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속앓이를 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바로 집값 급등으로 인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이들이다.
집값 상승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빚어졌는데, 보유세 증가분은 물론이고 종합부동산세도 대폭 늘어난 때문이다.
실제 22일 고지서가 발송된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납세자는 지난해보다 42% 늘어난 94만 7000명으로 집계됐다. 납부 세액은 전년 대비 217% 증가한 5조 7000억 원에 달한다. 대상자는 개인이 대부분이다. 94만여 명 가운데 개인이 88만 5000명이다.
다주택자냐 고액 부동산이냐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종부세를 내야 한다. 다주택자와 법인을 중심으로 종부세가 몇 배씩 오르면서 종부세 폭탄이 현실화된 것이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지만 부산, 대구 등 지방 집값도 적지않게 올라 이젠 수도권만의 얘기도 아니다.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산가나 기업도 있겠지만 월급 소득자나 은퇴 고령자의 경우 적지않은 부담이다.
“대출 내서 세금을 내야 한다”, “내가 지금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집 팔면 어차피 양도세를 내면 되는데 마치 돈을 번 것처럼 세금을 걷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등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일부 세무 전문가들은 “재산세 과표와 차이가 없는데도 세금이 이중으로 부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종부세 위헌청구 움직임도 보인다. 종부세 고지서가 발송된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는 종부세위헌청구시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종합부동산세 위헌청구 소송을 독려하는 게시글을 붙이기도 했다.
현 정부들어 소득계층간 갈라치기 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세금을 많이 걷어가는 이들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지원금 등을 통해 세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내는 이들에게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집권여당의 선거득표 전략과 무관치않다. 어차피 소득상위 30~40%까지는 여당편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현정부들어 유독 가진자를 적대시하는 정책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에 “역대 정권가운데 계층 갈라치기가 가장 심한 정부”라는 얘기도 나온다.
50대 한 종부세 대상자는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고 그 집을 보유한 이들을 적대시하고, 부동산 투기꾼으로 내몬다. 이게 정부냐”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다른 50대 회사원은 “정년 퇴임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가 세금이 많이 나와서 재취업했고, 월급은 세금 내는데 고스란히 들어간다. 내년에는 세금이 더 오른다는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편에선 “집을 팔면 되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양도세도 만만찮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이자를 올려 ‘내집마련 입구’를 봉쇄하면서 집을 내놓는 이들을 위한 이른바 양도세 인하 등 ‘출구’를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가진 자는 퇴치해야 할 ‘악’도 ‘적군’도 아닌 엄연한 국민이다. 진영논리에 갇혀있으면 이성적·합리적 판단을 해친다”고 말이다.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