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임대아파트 ‘고가 분양 전환’에 임차인 ‘날벼락’
금정구 래미안장전 114세대 37㎡ 기준 평당 2400만 원 요구 4년 전 첫 분양가의 3배 달해 임차인들 “거리에 쫓겨날 판” 민간 임대도 공공 영역 관리 절실 “행정 개입해 주민 피해 막아야”
부산지역 한 민간 단기임대아파트가 부동산 가격 폭등 상황에서 일반 분양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임차인들이 무더기로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놓였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민간 임대아파트가 제도적 허점 등으로 인해 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오후 2시께 금정구 래미안장전 아파트 임대 입주민 50여 명은 아파트 입구에서 금정구청까지 도보행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모두 2018년 이후 이 아파트 단지의 단기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임차인들이다. 그러다 단지 내 임대아파트를 사들인 민간 사업자가 내년 1월부터 해당 세대를 모두 주변 실거래가대로 일반 분양하겠다고 선언하자 이에 반발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금정구 래미안장전 114세대
37㎡ 기준 평당 2400만 원 요구
4년 전 첫 분양가의 3배 달해
임차인들 “거리에 쫓겨날 판”
민간 임대도 공공 영역 관리 절실
“행정 개입해 주민 피해 막아야”
임차인들에 따르면 현재 민간 임대사업자는 37㎡형 기준으로 3.3㎡(평)당 2400만 원 수준의 분양가를 요구하고 있다. 민간 사업자가 공시한 회계감사보고서 상의 첫 분양가격인 3.3㎡당 680만 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3배 넘는 가격으로 일반 분양하겠다는 뜻이다.
임차인들은 “임대 사업을 하는 민간 사업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야 할 아파트를 턱없이 높은 분양가로 일반 분양하면서 임차인들이 모두 쫓겨나게 생겼다”고 반발했다.
2017년 신축된 래미안장전은 모두 1938세대 규모로 이 가운데 단기임대아파트는 114세대다. 민간 단기임대아파트는 2015년 임대주택법이 민간임대주택법으로 개정되면서 탄생했다. 4년 이상 임대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임대 사업자에게 재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당초에는 취약계층의 주택공급을 활성화한다고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지난해 8월 폐지됐다. 민간 사업자가 의무 임대기간을 넘긴 뒤 높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매각하는 바람에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한 임차인이 쫓겨나는 등 부작용이 잦았기 때문이다. 의무 4년간의 임대 기간이 지나 일반 분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분양가를 통제하는 규정이 없어 폭등한 아파트 실거래가가 일반 분양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높은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당장 살던 아파트에 쫓겨날 처지에 처했다고 반발한다. 이들은 금정구청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 둔 상태다.
임차인 이태현(66) 씨는 “임대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는데 사업자가 갑작스레 분양을 통보했다”면서 “분양가가 너무 높아 임대차 계약 연장을 신청했지만 업체가 이를 거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임차인 정성언(55)씨는 “사업자가 일주일 내에 매입 여부를 결정하고, 한 달 안에 잔금을 치르라고 한다”면서 “반발에 기간은 연장됐지만 대출도 다 막힌 상황에 그 큰돈을 구할 수 없는 사람은 당장 거리로 쫓겨나야 할 판”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일반 분양을 준비 중인 민간 임대사업자는 래미안장전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볼 때 이번 분양가가 결코 높은 금액은 아니라고 맞받았다. 민간 임대사업자인 A업체 측은 “아파트 일반 동의 경우 3.3㎡당 3000만 원 이상의 금액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임대 동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분양가를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민간 임대주택 사업에서 부작용이 속출하자 주거 안정성 보장을 위해 민간임대주택도 공공 영역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정비업체 명성디앤씨 김병무 대표는 “분양가격에 대한 기준이 나와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처럼 민간임대아파트도 동일한 법령이나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임대사업으로 인한 주거 안정성 문제는 계속 불거질 수 있어 공공임대 주택의 매입비 현실화 등을 통해 임대주택의 공공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도 높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악용되고 허점이 드러나면서 도리어 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꼴”이라며 “민간업자가 터무니없는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는 것과 임차인들에게 별다른 구제책이 없는 점에 대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제도 개선을 통해서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진석·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