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까지 모신 통영, 윤이상은 아직도 불편한 존재?
“‘상처 입은 용’은 고향에 와서도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다.”
간첩으로 몰려 머나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음악가 윤이상(1917~1995). 사후 23년 만인 2018년, 그토록 바라던 고향 통영에 묻혀 영면에 들었지만 해묵은 이념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선생의 묘소는 아직 대중의 반감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올해도 외딴곳에서 쓸쓸히 겨울을 맞고 있다.
시청 홈피에도 묘역 안내 없고
이정표 안 보여 물어물어 참배
통영시에 따르면 윤이상 선생의 유해는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 뒤뜰에 묻혔다. 생전 ‘고향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던 선생의 뜻에 따라 택한 장소다. 하지만 일반인이 묘역을 찾아 참배하기란 쉽지 않다. 거대한 음악당 건물에 가린 데다, 이정표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찾기 어렵다. 겨우 발견한 이정표엔 ‘윤이상 추모지’라는 모호한 단어가 적혀있다. 통영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묘역에 대한 안내는 없다. 어렵게 현장을 찾은 이들은 “애써 감춰 놓은 느낌”이라고 했다. 물어물어 왔다는 한 방문객은 “한참을 돌았다. 이정표는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통영시는 묘역 훼손 우려가 커 적극적으로 알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선생의 유해 송환 당시 지역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반색했지만, 보수단체는 선생의 행적과 이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안장 후 시민사회가 마련한 추모식에선 일부 단체가 묘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윤 선생 사진을 찢고 불태우며 묘역 철거를 요구했다.
통영시 관계자는 “이후에도 묘역에 해코지하는 불상사가 일부 발생했다”며 “유족도 고인의 뜻을 존중해 최대한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라,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대나 거부감 역시 소통의 표현인 만큼 억지로 막으려 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강제윤 시인은 “위해를 당할까 걱정돼 쉽게 찾을 수도 없는 궁벽한 구석에 두는 것은 불편한 존재라 숨기려는 처사일 뿐”이라며 “그럴수록 더 공개적인 광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