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양귀비 피는 방
정안나(1962~)
희극과 비극의 양귀비 피는 방
하루 일과표가 향하는 찬송가는
달라진 시편의 토씨는 목사님의 방언에 있는 방
아침이면서 저녁이 공중부양하는 방
소곤소곤 기억과 착시의 영역으로
그를 붙이고 꽃이 스며드는 시간
어제는 손톱만 한 패치 진통제를 떼었지
손톱 발톱만 한 자리도 씻는다고
다리를 들었다 놓다 손톱을 잃어버려
양귀비는 돌아갈 수 없는 방
통증이 불신을 만들어내는 언젠가는 내 방
광대를 보고 싶은 자화상이기 시작해
방언을 버리는 양귀비가 보이네
-시집 (2021) 중에서-
삶의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가 고민하고 고통에 빠질 때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치료제는 종교였다. 통증이 심할수록 통성기도와 방언의 효과는 뛰어났으며 신약을 마치고 들어간 구약의 시편은 문학의 거대한 표본이었다. 지금도 놓으려는 나의 손을 그 분은 놓지 않고 있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쉬운 회개와 잦은 용서는 또 다른 번민과 고통을 주었다. 작은 용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큰 용서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니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생명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조건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호킹, 코오친, 하라리같은 똑똑한 형님들에게 공통적으로 듣고 나니 주말을 맞이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 권사님도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았고 눈물 흘리는 밤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삶이 저물어 갔다.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