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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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에는 임시 개방 중인 수목원이 있다.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는 물론이고 승효상과 알바로 시자 같은 대가의 건축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수목원 이름은 ‘사유원(思惟園)’, 생각하는 정원이다. 지난여름 초입 연둣빛 신록이 무성할 때 그곳을 다녀왔다. 숲과 숲 사이에 들어선, 텅 빈 건축물 사이를 걷기만 했는데 마음이 숙연해지고,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장소의 혼>을 쓴 크리스찬 노버그 슐츠가 “건축의 기본적인 행위는 어떤 장소의 소명을 이해하는 것”이라더니, 과연 그 치열한 고민 덕분에 방문자의 감동은 배가 됐다.

공간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린 건 엊그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하 반가사유상)’ 두 점을 만나면서다. 가끔 서울 볼일이 있을 때 박물관에 들러서 챙겨 보곤 했는데, 이번처럼 오래도록 가까이서 바라본 적은 없었기에 감흥이 남달랐다. 알려졌다시피 이 두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대표 문화재로 손꼽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이다. 지금은 문화재 지정 번호가 폐지됐지만, 78호와 83호를 말한다. 삼국시대인 6∼7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조 기술이 뛰어나고 조형성이 탁월해 국내 반가사유상 중에서도 백미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번엔 왜 남다르게 느껴진 것일까. ‘사유의 방’ 덕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에 들어선 사유의 방은 오로지 두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공간이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글귀를 지나자 사방이 캄캄하다. 어둠에 적응하면서 모퉁이를 도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소극장 크기만 한 공간에 타원형 무대가 있고, 그 위에서 반가사유상 두 점이 미소 짓고 있다. 수많은 빛으로 몽환적 느낌을 주는 천장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은 거의 일체가 된 듯했다.

불상을 둘러싼 유리 칸막이가 없다는 것도 크나큰 장점이다. 탑돌이를 하듯 반가사유상 주위를 맴돌았다. 사방에서 불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반가좌의 자세에 입가에는 고졸한 미소를 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마저 고요해졌다. 사유원의 텅 빈 공간에서 느꼈던 감동이 사유의 방에서 되살아났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화와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깨달음의 순간, 번지는 염화시중의 미소는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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