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아직도 롯데 자이언츠 얘기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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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아직도 롯데 자이언츠 얘기를 하십니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얘기를 꺼냈더니 주변에서 하는 말이다. 롯데가 언제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됐나 싶다. 그러고 보니 최근 롯데 얘기를 주위에서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최고의 ‘야구 도시’라고 하는 부산에서 연고 팀인 롯데 얘기를 서로 꺼린다. 지난 18일 KT의 우승으로 올 시즌이 막 내린 이후엔 더 그런 느낌이다. 롯데에 대한 부산팬의 냉소와 냉랭함의 강도가 부쩍 더해진 듯하다.

아무래도 롯데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야구 출범 40년 동안 롯데가 부산팬에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줬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 몇십 배의 괴로움과 슬픔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 질긴 인연을 어쩌지 못하고, 매번 시즌 초만 되면 돋아나는 새싹처럼 ‘롯데 희망가’를 마음속으로 키우곤 했던 게 부산팬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마저 괜한 짓으로 생각하는 홈팬이 늘어난 것 같다. 롯데의 부활에 다시 희망을 걸기에는 그동안의 기다림이 더 고통임을 알기 때문이다.

올 우승팀 KT 주축 다수가 롯데 출신
롯데는 또 하위권, 서로 얘기도 꺼려

갈수록 홈팬의 냉소·냉랭함 더해
구단 전통·정체성 모두 상실 중

타 구단도 롯데 침체 걱정하는 지경
선수단 육성·소통 등 환골탈태 절실


롯데의 우승은 이미 기억 속 박제가 된 지 오래다. 역사가 된 1984년과 1992년 우승 이후 29년간 암흑의 시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정상을 밟지 못한 팀이 롯데다. 창단 8년 이내에 연달아 우승에 성공한 NC와 KT를 거론하면 롯데의 처지는 더 초라해진다. 롯데는 NC와 KT의 창단이 논의될 당시 기존 구단 중 유일하게 끝까지 이를 반대했던 구단이다. 새 팀 창단보다는 프로야구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랬던 롯데는 우승은커녕 ‘가을야구’라도 실컷 즐기기를 고대했던 홈팬에게 4년 연속 하위권의 성적만 남겼다.

롯데는 왜 이러냐는 의문이 안 생길 수 없다. 실마리가 될 얘기가 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야구계에선 우승팀 KT 못지않게 하위 팀 롯데가 자주 입길에 올랐다. KT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중 예전 롯데에 몸담았던 선수가 8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 중 7명이 모두 구단 간 합의로 롯데를 떠났다. 그런데 이들이 KT 우승의 핵심 역할을 했다. 내보내고 보니 이들이 보배였던 셈이다. 야구계에서는 이들이 올 시즌 롯데에 가장 필요했던 선수들이었다고 지적한다. 롯데에선 잘 풀리지 않다가 KT로 옮긴 뒤엔 펄펄 날았으니, 부산팬들이 모래를 씹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물론 올해 성적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롯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선수단 육성이나 소통 등 구단 운영과 관련한 롯데의 행태는 그동안 적잖게 입방아에 올랐다. 올 시즌만 해도 최근 결별을 통보한 외국인 선수 딕 마차도의 경우를 보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롯데는 내년 선수단 운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딕 마차도의 재계약 불가 통보 사실을 배경 설명 없이 SNS를 통해서만 알렸다. 시즌 종료 뒤 팬들이 거취를 가장 궁금해하던 선수가 마차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팬들로서는 화가 날 법도 하다. 시즌 도중 금지약물 징계로 은퇴를 결정했던 송승준 선수의 처리를 두고도 뒷말이 적지 않았다. 롯데가 가장 중요한 선수단, 홈팬과의 소통에서 여전히 경직된 조직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쌓여 타성이 됐다. ‘구단 롯데’의 이미지도 이렇게 굳어져 계속 재생산된다. 아무리 롯데가 삼성과 함께 10개 구단 중 둘만 원년 이름을 간직한 ‘전통의 구단’이라고 해도 허울뿐이다. 롯데에 이미 그에 걸맞은 위상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나 싶다.

전통의 구단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이제 롯데엔 칭찬보다 퇴색과 후퇴의 어감으로 더 강하게 다가온다. 현실이 전통을 짓밟고 있는 게 지금 롯데의 모습이다. 29년간 우승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프로야구를 상징할 만한 레전드의 배출, 선수단 구성과 분위기, 구단 행정이 신생 구단보다 오히려 뒤처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타 구단도 롯데의 침체와 무기력을 걱정하고 있을까. 야구계에서는 롯데가 갈수록 구단 전통과 정체성을 모두 잃어가는 중이라는 지적이 많다. 나름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 건 아닌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효과는 나지 않는 구단이 롯데라고도 한다. 그룹의 문화와 기조 자체가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나마 아직 롯데에 애정이 남아 있는 팬이라도 있어 이 정도 말이나마 나온다. 롯데가 분명히 알고 깊이 새겨야 할 사실이다. 롯데 야구가 창피함이 아닌 자랑스러움이 되게 해야 할 책무 역시 롯데 몫이다. 팬들이 그만큼 했다면 이젠 뭔가 달라질 때도 됐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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