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쏘리 웍스(Sorry Works!), 사람의 무늬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30여 년 전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여행을 위해 자동차를 렌트해야 했다. 이 일을 도와준 친구의 첫 번째 조언은, 작은 접촉 사고라도 났을 때 절대로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과실을 인정하는 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란다. 모든 문제를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다툼으로 해결하는 미국의 현실이었다. 장소를 도로에서 의료 현장으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이후 참석했던 의료윤리 관련 국제 학술대회에서도 미국 참석자들은 옳고 그름을 논하는 윤리보다는 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법 관련 주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연간 1만 7000건의 의료소송이 제기되고 여기서 패소하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뭔가 크게 잘못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실수 바로잡으며 살아가는 게 인생
경쟁과 힘의 논리로 보는 시선 딱해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 새 세상 열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국의 의료계는 최근 '쏘리 웍스(Sorry Works!)'라는 의료분쟁 해결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안(sorry)’이란 말을 사과가 아닌 위로로 해석해 피해자와의 소통에 적극 활용하자는 것이다. 의료인이 건넨 위로의 말을 과실의 증거로 쓸 수 없게 하는 법이 제정된 주들도 많아지고 있다. 책임의 소재와 관계없이 환자가 겪은 고통과 손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을 표현해 피해자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위로와 사과를 명확히 분리해, 책임의 소재가 가려지기 전까지는 위로를, 과오가 인정되고 나서는 위로와 함께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위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의 표현이고 사과는 그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죄책감의 표현이다. 전자는 서로 돕도록 진화한 생물학적 공감 본능의 발로이고 후자는 공동체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진화한 사회와 문화의 규범에서 나온 감정이다. ‘마음이 편치 못하고 안타깝다’는 뜻의 우리말 ‘미안(未安)’은 전자에 가깝고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다’는 뜻의 ‘죄송(罪悚)’은 후자에 가깝다. 위로는 안타까움을 담은 감정의 표현이고 사과는 죄스러움을 표현함과 더불어 그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정의의 실천 의지가 담긴 행위인 것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을 구분하여 피해자를 위로하는 동시에 법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는 전략을 구사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피해 당사자들은 사건 초기에 가해자로 의심되는 당사자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송의 의지를 많이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위로는 효과가 있다(works)!
하지만 과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사과에 관한 책을 쓴 정신과 의사 아론 아자레에 따르면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정말로 어려운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수치심은 ‘자신의 이미지대로 살지 못한 경험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죄책감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사라지지만, 수치심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므로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너무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에 발목이 잡혀 일상의 귀중한 인간관계를 망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만든 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불가능한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다.
사람은 그 직업이 무엇이든 완벽할 수 없다. 의사의 수술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며 기자의 기사와 검사의 기소와 판사의 판결에 오류가 없을 수 없다. 실수를 하기 때문에 사람이고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살만한 것이다. 물론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인생을 다루는 판검사의 실수를 절대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소송과 비난이 아닌 진심 어린 위로와 사과가 용서와 만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사람의 무늬를 보고 싶다. 이 무늬는 우리 모두가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으로 남의 허물을 감싸 안을 때 생긴다.
실수가 아닌 고의로 저지른 일이면서도 전혀 반성하지 못하는 부류도 있다. 수백 명의 귀중한 목숨을 권력과 맞바꾼 반란군 수괴이며 독재자인 전두환은 잘못에 대한 인정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를 옹호하다 비난이 쏟아지자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린 철부지 정치인도 있다. 35년이나 이 땅을 지배하며 저지른 온갖 패악질에 대해 이전 정부가 했던 사과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극우 세력도 있다. 세상을 오로지 경쟁과 힘의 논리로만 바라보아 더 넓은 열린 세상을 보지 못하는 딱한 사람들이다.
쏘리 웍스!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는 사람들의 무늬를 어우러지게 하여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새 세상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