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어벤져스 도미기사, 50년 만에 부산에 오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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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인in人] 7. SNT모티브 '영웅들의 귀환 행사'

 

11월 28일 김해공항에 도착한 도미기사 일행. SNT모티브 제공 11월 28일 김해공항에 도착한 도미기사 일행. SNT모티브 제공

자주국방 영웅들이 뿌리를 찾아 돌아왔다.

최초의 국산 소총을 생산한 주역 '도미(渡美)기사' 10명이 부산에서 홈커밍데이를 가졌다. 부산의 글로벌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 SNT모티브는 11월 28~29일 양일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생존 도미기사 10명을 부산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50년 만에 귀환한 영웅들은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후배 엔지니어들을 격려했다.

이들은 황익남, 강흥림, 곽현환, 김은호, 김형우, 박남섭, 양재근, 유태권, 윤영길, 이경식 도미기사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강영택 단장은 메시지를 보내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공장 내에 전시된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내에서 생산한 M16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이재희 기자 공장 내에 전시된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내에서 생산한 M16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이재희 기자

자주국방 의지로 탄생

1971년 국내 주요 일간지에 특이한 광고 하나가 게재됐다. ‘M16 소총 제조공장 도미 훈련 기사 모집’ 공고다. 엄격한 자격요건(공대 기계과 졸업, 군필자, 기계 관련 분야 경력 5년, 미국인 기술자와 30분 이상 영어로 대화 가능한 자 등)이었지만 전국에서 1800여 명의 공학도가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27명이 선정됐다. 이들이 자주국방의 주역이 된 ‘도미기사’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차세대 무기 체계를 고민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총이었다. 마침 극한 대결로 치닫던 남북관계와 베트남 전쟁은 자주국방의 강한 자극제가 되었다. 박 대통령이 국방부 관계자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월남에서 사용한 M16소총이 우리 군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서에 썼는데 그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소?" 한 참모가 답했다. "60만 정 구매하면 됩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자 아니요! 우리가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의 수치를 당한 것은 일본의 조총 때문인데 북한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군의 기본무기인 소총 하나도 못 만들면서 어떻게 적을 이길 수 있겠는가? 반드시 우리가 만들도록 조치하시오.”


옛 국방부 조병창 기념비 앞에 선 도미기사. SNT모티브 제공 옛 국방부 조병창 기념비 앞에 선 도미기사. SNT모티브 제공

이미 1970년 미국 정부와 한국 소총공장 건설을 합의한 터였다. 1971년 3월엔 미 콜트(Colt)사와 기술 지원 협정 체결과 동시에 도미기사 모집과 조병창 건설을 진행했다. 국방부 조병창은 부산 기장군 철마산 아래인 현 SNT모티브 자리에 세워졌다. 도미기사들은 최장 1년 이상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바야흐로 최초의 국내 제작 총기가 탄생했다. 그 영웅들이 꼭 50년 만에 처음 그 자리에 다시 섰다.

‘떠난 지 40년이 훌쩍 지나 그리던 공장 시설을 직접 보고 나니 옛날 시설이 다 유지되고 또한 더욱 발전된 모든 현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섬세한 환영 절차와 각종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도합니다.’ 곽현환 도미기사가 환영 행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가 후 SNT모티브 홍보팀에 보낸 메시지다.


도미기사를 환영하는 김형철 SNT모티브 대표이사. 도미기사를 환영하는 김형철 SNT모티브 대표이사.

영웅들 부산으로 오다

SNT모티브가 1박 2일 동안 진행한 '영웅들의 귀환' 행사에서 도미기사들은 일부 부인까지 동반해 부산에서 옛 추억을 되새겼다. 11월 28일 부산에 도착한 이들은 29일 오전 10시부터 부산 호텔농심 사파이어홀에서 열린 귀환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도미기사와 부인 등 16명과 육군 53사단 관계자, SNT모티브 임원진과 신입 인턴사원 등이 참석했다.

김형철 대표이사는 "선배님들이 흘린 땀이 오늘날 SNT모티브 정밀 기계 정신의 원동력이자 모태가 되었다"며 "고향의 아버님을 뵙듯 꼭 한번 모시고 싶었다"고 환영했다. 참석 도미기사들은 하나같이 "잊지 않고 챙겨줘서 고맙다. 우리가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흘린 땀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어 너무 자랑스럽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SNT모티브의 미래 사원인 청년들은 "선배님을 직접 뵙고 보니 참 좋은 회사에 취직한 것이라 뿌듯하다"며 "초창기 소총 국산화를 위해 노력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라"고 부탁했다.


호텔농심에서 열린 도미기사 환영 행사. 호텔농심에서 열린 도미기사 환영 행사.

도미기사들은 하나같이 해외여행이 엄격히 제한된 시절 국가의 특혜를 받고 미국으로 가서 1년 동안 생활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묻더라고요. 왜 혼자 왔나고. 여행이나 해외 연수를 갈 때 부부가 동반하는 미국인의 눈에는 1년이란 긴 세월을 남자 혼자 와 있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도미기사 중에는 불과 결혼 14일 만에 미국행 비행기를 탄 이도 있었다.


좌충우돌 미국 연수 에피소드

"좌변기가 적응이 안 돼 애를 먹었습니다. 좌변기 위에 올라가 쪼그려 앉다가 변기를 깬 적도 있어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은 경험담이 대부분이었다. "그 맛나게 보이던 닭똥집을 포기한 동료가 있어요. 미국인은 안 먹는 것이니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느라 포기했죠." 도미기사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비록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었지만, 대한민국의 민간 외교관이라는 생각으로 생활했다. 물론 주말이면, 피크닉을 가거나, 미국 가정에 초청돼 미국인과 교류하는 여유도 누렸다.

“미국 콜트사 엔지니어들이 우리 기사들에게 맨투맨으로 붙었습니다. 각각의 공정과 교육 내용이 달랐어요. 누구는 드릴링(Drilling), 누구는 밀링(Milling), 누구는 품질보증(QA) 등등… 당시 콜트 엔지니어들이 그랬습니다. M16 소총 제조공정을 배워가면 나중에 항공기까지 만들 수 있다고요.” 강흥림 도미기사가 말했다.

유태권 도미기사는 “M16 소총은 AK47 소총과 달리, 부품도 많고 공정도 다양합니다. 이를 만들기 위해 초정밀 가공을 배웠습니다. 도미기사들이 배운 기술로 소총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나라 최초 정밀기계공업의 시작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도미기사들이 SNT모티브에 기증한 미국 연수 당시의 사진과 기념 물품. 이재희 기자 도미기사들이 SNT모티브에 기증한 미국 연수 당시의 사진과 기념 물품. 이재희 기자

“정밀기계공업의 효시”

당시 도미기사들은 의무적으로 국방부 조병창에 5년간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이후 남은 사람들은 민영화한 대우정밀에서 계속 근무했고, 조병창을 그만두고 나온 기사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서 한국 방위산업을 이루고 있는 업체들에 들어가 포, 전차, 항공기 등 제조의 기틀이 되며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유 도미기사가 말했다.

이경식 도미기사는 “같이 생산한 병기 부품은 모두 호환이 되어야 하기에 1주일에 동안 생산한 소총을 그대로 다시 분해해서 부품마다 치수 허용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다시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며 "수리 부품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밤새워 애썼던 우리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고 자랑했다.

황익남 도미기사는 “1974년인가 방위산업 한 분야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우리가 서울, 부산 팀으로 나눠 조사를 한 일이 있다"며 "실제 가보면 설계가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런 사고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기술도 향상됐다. 정밀기계공업에서 우리 도미기사들이 국내 최고였으니 방산업체 경영자를 교육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지금도 존재하는 방산업체 병역특례제도가 도미기사들의 건의로 만들어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김은호 도미기사는 “백업 엔지니어들이 기술만 가르쳐 놓으면 민간업체에서 스카우트를 해갔다"며 "당시에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이런 일이 많아지니까 ‘병역특례’가 생겨 군대 복무를 산업현장에서 하는 제도가 도입됐다"고 알려주었다.


자주국방 1세대 '도미(渡美)기사'들이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를 방문, 회사 임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자주국방 1세대 '도미(渡美)기사'들이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를 방문, 회사 임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국방부 조병창 자리 SNT모티브

청년들의 질문에 일일이 성심껏 답한 도미기사들은 이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그토록 그리워하던 옛 국방부 조병창 자리에 있는 SNT모티브로 향했다.

영웅들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SNT모티브 정밀조병비 앞에 모여있던 후배 엔지니어들이 뜨거운 박수로 영웅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도미기사들은 감개무량한 듯 옛 조병창 건물이 여전히 존재하는 공장을 둘러보았다. "창문만 바뀌었지 건물은 그대로네요." 한 도미기사의 눈에 이슬이 살짝 맺혔다.

기념사진 촬영과 회사 환영행사를 마친 ‘도미기사’들은 방명록에 서명했다. '정밀조병의 요람으로서 SNT가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1월 29일 국방부 조병창 공장장, 기술과장, 기술실장, 생산부장, 부창장 황익남' 황익남 도미기사가 멋진 필체로 방명록을 장식했다.


자주국방 1세대 '도미(渡美)기사'들이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 방산공장을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자주국방 1세대 '도미(渡美)기사'들이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 방산공장을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기록영화를 보면서 옛일 기억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깜짝 놀랄 기획에 깊이 감사드리고 앞으로 그런 정신이 성공을 보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부탁드릴 말씀은 선진국처럼 한 분야에 계속 종신토록 근무할 수 있는 제도의 정립도 부탁드립니다'고 유태권 도미기사는 또 방명록을 썼다. 양재근 도미기사는 ‘기술에 대한 욕망은 처절하고 맹렬하게 추구하시기 바랍니다’고 썼다.

방명록을 적는 책상에는 도미기사들이 기증한 당시 사진과 노트, 메모, 서적, 물품 등이 진열돼 있었다. SNT모티브는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도미기사들의 기증품을 영구 보존키로 했다.


최신 생산라인에 선 도미기사

총기 생산 현장 견학에 나선 도미기사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후배 엔지니어들이 일하는 장면을 보고 격려하거나, 예전과 달라진 공정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공장 내부에 있는 진열대에 놓인 M16 소총을 본 김은호 도미기사는 "소총의 윗몸통 제작을 내가 담당했다"며 소총을 어루만졌다. 퇴직할 때까지 SNT모티브에 근무한 강흥림 도미기사에게는 후배들이 다가와 "선배님 여전히 정정하십니다"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도미기사 귀환 행사. 도미기사 귀환 행사.

이 자리에서 SNT모티브 박문선 특수사업본부장은 “현재 회사가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 등을 통해 소총, 권총, 기관총, 저격용 소총 등 풀라인업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로 완성된 근간에는 조병창 시절 ‘도미기사’분들의 땀과 노력으로 쌓은 숭고한 기술이 있다”며 “대한민국 자주국방 1세대 ‘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마음을 담아 행사를 마련했다”고 인사를 전했다.

박 본부장은 SNT모티브가 세계 3대 소화기 제조업체로 우뚝 성장한 근원을 잊지 않고 있다며 도미기사에게 거듭 경의를 표했다.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 방산공장을 방문한 도미기사들이 전시된 각종 소총을 구경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29일 부산 기장군 'SNT모티브' 방산공장을 방문한 도미기사들이 전시된 각종 소총을 구경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세계 3대 총기 회사로 우뚝 서다

강흥림 도미기사는 “SNT모티브가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국산 K시리즈 화기들의 발전과 함께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역사를 길이 남기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개인화기 제조강국이 되는데 지속해서 이바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문선 특수사업본부장은 “소총을 개발부터 생산까지 하는 소구경 화기 제조업체는 전 세계에 극소수에 불과한데, 방산 강국을 염원했던 국방부 조병창의 역사를 이어받은 SNT모티브가 그중 하나”라며 “항상 전시를 대비해야 하는 국가 임무에 따라 숙련된 생산인력과 안정된 설비로 고품질,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공장으로 지켜져 왔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이어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되는 K시리즈 화기들은 정밀기계기술의 튼튼한 뿌리와 함께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발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발 및 생산, 품질 등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며 자주국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73년 11월 29일 국방부 조병창 건립 기념 비문에 이렇게 새겼다. '국방은 한 나라의 존립을 보장하는 최대의 요건. 방비를 등한히 해 외적의 침략을 받았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말자. 여기 자주국방을 다짐하는 무기 생산의 터전을 마련했다. 우람한 가동 소리는 조국의 영원한 안전과 자유를 굳건히 보장하리라.' 선생의 말씀을 축약했지만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시원이 부산 기장군 철마면 전 국방부 조병창이다. 조병창은 (주)대우정밀로 민영화한 뒤 현재 SNT그룹(회장 최평규)의 SNT모티브로 발돋움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자주국방의 대의는 면면히 이어진다. 그 거룩한 여정에 묵묵히 복무한 이들을 발굴해 <부산일보>는 ‘자주국방 인in人 시리즈’를 지면과 온라인에 연재한다. 모든 영웅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를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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