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오미크론 변이 창궐, 크리스마스 악몽 될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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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달려야만, 이곳에 겨우 머무를 수 있을 뿐이야!” 앨리스는 거울나라에서 붉은 여왕과 함께 나무 밑을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붉은 여왕에게 묻는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붉은 여왕이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는 아무리 달려 봐야 그냥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거울나라에서는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는 이상한 곳이었다.

1973년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 밴 밸런(Leigh Van Valen)은 어떤 생물종이라도 계속 진화하여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멸종한다는 이론을 설명하면서 ‘붉은 여왕의 가설’을 끄집어냈다. 밸런은 지구에 존재한 생명체 90~99%가 멸종했는데,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생명체가 결국 멸종한다고 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견된 코로나19가 숱한 변이로 진화하면서 이 가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도 세대교체를 하면서 인간이 만들어 낸 백신, 살균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변이가 계속 출현했다. 인류와 병원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일본 수도 도쿄 외곽 나리타 공항 제1 터미널의 입국장이 외국인 입국 금지 조처로 승객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 일본은 오미크론 변이 차단을 위해 이날부터 전 세계 모든 외국인의 신규 입국을 금지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일본 수도 도쿄 외곽 나리타 공항 제1 터미널의 입국장이 외국인 입국 금지 조처로 승객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 일본은 오미크론 변이 차단을 위해 이날부터 전 세계 모든 외국인의 신규 입국을 금지했다. 연합뉴스

■ 인류와 세균의 영원한 진화·생존 경쟁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종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돌연변이 대부분은 병원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증식이나 병원성, 혹은 바이러스의 감염을 억제하는 중화 항체와의 결합을 피하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다른 바이러스보다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집단 중에 더 잘 퍼지게 된다.

일본에서 확진된 아프리카 나미비아 외교관도 모더나 코로나19 백신을 2회 맞은 접종 완료자로 돌파감염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오미크론 감염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하고 돌파감염된 경우였다. 현재의 코로나 백신은 중국 우한에서 2020년 1월에 발견된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오미크론과 같은 변이 바이러스가 백신 혹은 이전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서 형성된 면역력을 회피하여 바이러스 재감염을 일으킨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전에 형성된 항체의 상당수를 무력화하는 변이가 유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미크론을 가장 높은 수준의 ‘우려 변이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는 “(백신 효능이) 델타 변이와 같은 수준일 수는 없다. 중대한 (효과) 감소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오미크론 변이의 유전자 변이 50개 중 32개가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에 나타난 것과 관련해 “스파이크에 돌연변이가 많을 경우 인체의 면역 체계가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변이의 폭이 크고 넓으면 현재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오미크론 변이 위협으로 비상인 가운데 1일(현지시간) 뉴욕 거리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 검사소에서 주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오미크론 변이 위협으로 비상인 가운데 1일(현지시간) 뉴욕 거리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 검사소에서 주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 코로나 종식될까?

“이젠 살 만하다”며 안도하게 했던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다시 불확실한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미크론은 한국을 비롯, 최소 30개 국가 이상으로 퍼진 것으로 확인됐다. 모더나 방셀 CEO는 “오미크론 변이가 대부분 국가에 이미 퍼졌을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일상을 회복하던 유럽 각국도 다시 강력한 봉쇄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일본, 이스라엘 등도 외국인 입국 제한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경 봉쇄에도 오미크론 변이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국경 봉쇄는 페스트로 인해 성문을 걸어 잠그던 중세 시대로 되돌아간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국제 협력과 공조 방식을 찾지 않으면 코로나 팬데믹은 더욱 심각해지고 장기화할 수 있다.


■ 계속되는 변이 경고, 백신 독점의 재앙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회색 코뿔소’라는 용어가 있다. 지진처럼 ‘쿵쿵’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는 코뿔소처럼, 지속적으로 위험이 거론됐지만 가시화하지 않은 경고를 간과할 경우, 통제 불능의 코뿔소를 끌어들이는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영양결핍과 AIDS 등 각종 질병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빈곤 국가 국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변이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보냈다. 미국 CIA는 비공식적으로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경우 인구의 25%를 에이즈 잠재보균자로 추정할 정도이다. 특히,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 지부티,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정글과 사막 지형에, 내전까지 벌어지면서 백신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백신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에 백신 지원을 하는 기부 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는 모든 국가에 인구의 20%를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에서는 2022년 중반까지 아프리카에 25% 백신 접종 완료는 이루기 힘들다고 보도하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은 엎친 데 덮친 격

국내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은 위드 코로나 이후 신규 확진자가 5000명 선을 넘어서면서 초유의 병상 부족 사태까지 겪고 있는 한국에도 5차 유행이 시작됐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겨울철 추위로 실내에 주로 머물면서 바이러스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김우주 교수는 “연말에는 일평균 신규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을 수 있다. 올해 겨울은 가장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주 교수는 “오미크론의 감염재생산지수(환자 1명이 몇 명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는 1.94로, 6일 동안 확진자가 4배 전파되는 수준의 전염력을 보이고 있다”면서 “오미크론은 백신 효과까지 약화시킬 수 있어 심각한 방역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전문가는 “일일 확진자가 2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문제는 한국은 델타 변이로 인한 대유행마저도 현재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접종여부 관계 없이 수도권 10인, 비수도권 12인까지 사적모임이 가능한 기존 모임 제한을 수도권 6인, 비수도권 8인까지로 조정했다. 위드 코로나에 발맞춰 기지개를 켜던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마음은 까맣게 타고 있다.

방역에 정치적 계산이 개입할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치권은 방역 수준 강화 조치가 일상 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어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내심 가질 수도 있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방역 성적표에 정권의 운명이 걸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집단면역 가능할까?

집단면역은 집단 상당수가 면역을 보유해 일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주변으로 전파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소아마비의 경우 집단의 80% 정도만 면역을 가지면 집단면역을 이룰 수 있다. 코로나의 경우 ‘아직 모른다’가 정답이다. 한국 정부도 코로나 초기에 70% 백신 접종이 집단 면역 예상치라고 추정했지만, 목표치를 달성하고도 신규확진자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저자 남궁석 박사는 “코로나19는 세계의 모든 곳에서 집단 면역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19는 계속 돌연변이를 일으켜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백신을 통해서 면역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재감염시킬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한다. 백신의 효과와 사람의 면역 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오미크론처럼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백신에 의해서 형성된 면역력을 무력화하는 성질을 가져 면역력이 생긴 사람도 재감염시킬 수 있다.

물론, 백신이 변이체 바이러스를 완전히 예방하지 못하더라도, 대부분 중증이나 사망을 예방하는 데 유효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모든 백신은 접종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혈액 중의 항체 수준이 떨어지므로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부스터샷을 접종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일상으로의 복귀는 언젠가는 올 것이만, 질병이 사라지는 완전 종식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시험에 관여했던 앤드루 폴러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미 지난 8월에 “백신을 접종해도 델타 변이 감염이 계속되고, 집단면역이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를 내놓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OR탐보 국제공항에서 한 여행객이 바닥에 주저앉아 탑승 가능한 항공편을 찾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해 진원지인 남아공과 인근 국가에서 오는 항공편의 입국을 차단했다.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OR탐보 국제공항에서 한 여행객이 바닥에 주저앉아 탑승 가능한 항공편을 찾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해 진원지인 남아공과 인근 국가에서 오는 항공편의 입국을 차단했다. 연합뉴스

■ 해피 크리스마스는 언제?

백신 접종이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팬데믹 종식은 어렵다는 진단이다. 바이러스의 생존을 위한 진화인 변이 출현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빈곤 국가에서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계속 발생하면서, 개발된 백신 효능을 무력화시키는 변이체가 나와 다시 선진국으로 유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폐쇄, 무역 중단 등 격리를 통한 방역은 효과가 없다. 오히려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남궁석 박사는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이 바이러스가 확산한다면, ‘인간이 어떤 수준의 위험까지를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행복을 유지하는 데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류와 바이러스의 진화의 경쟁은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은 변이에 맞서는 새로운 백신 개발 및 부스터샷 접종과 함께 마스크 착용, 손씻기, 거리 두기 등 개인위생이 현재로서는 최고의 방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붉은 여왕의 진단이 코로나 상황에도 적용될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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