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보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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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무지개의 마지막 색이다. 볼 수 있는 색상 중에 가장 파장이 짧다. 더 짧으면 자외선으로 분류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아무나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보라는 황제의 색이기 때문이다. 네로는 보라색 옷을 입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까지 만들었다. 보라색은 만들기가 어려워 귀했다. 보라 1g을 위해 고둥이 약 1만 마리가 필요했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원할 때 보라에 끌린다고 한다. 색채 심리학자들은 보라는 심신이 피로할 때 찾게 되는 ‘치유의 색’이라고 규정했다.

대면 공연을 2년 만에 재개한 BTS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을 흔들어 놓았다. 2일까지 모두 4차례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며 티켓 판매로 3330만 달러(393억 9000만 원)를 벌어들였다. 보라의 물결이었다. 마스크를 BTS의 상징색인 보라로 통일한 아미들이 서로 “보라해(I purple you)”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라해’는 BTS와 팬들 사이에서 ‘서로 아끼고,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좋아해 주자’는 뜻이다. BTS가 가는 도시는 매번 보라로 물든다. 2019년 6월 부산의 광안대교, 영화의전당,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등도 보라였다.

또 하나의 세계적인 보라가 탄생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2일 ‘퍼플(purple)섬’으로 알려진 전남 신안군 반월도와 박지도를 ‘제1회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한 것이다. 이들 섬은 1492m의 해상 목교인 퍼플교를 비롯해 마을의 지붕, 어장 표시까지 모두 보라로 단장했다. 보라색 옷을 입으면 입도가 무료, 마을 식당에서 파는 밥까지 보라일 정도다. 유엔세계관광기구는 전 세계적 고민인 지역 불균형과 농촌 인구 감소 문제의 해결책을 관광에서 찾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주민들이 떠나가며 가구 수가 손에 꼽을 정도인 이들 섬에 2019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55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CNN도 퍼플섬을 ‘사진작가들에게 꿈의 섬’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마케팅 대가 세스 고딘이 2002년에 쓴 가 떠오른다. 누런 소들 사이에 보랏빛 소가 있다면 사람들은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보랏빛 소가 되기 위해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주목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신안군 한 관계자는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색깔로 승부수를 띄워 성공을 거뒀다”라고 말했다. 보라는 지금까지 마케팅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진다. 나만의 색깔이 필요한 것이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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