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허무는 천민자본 시대… 혁명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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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시인은 시집 <뿌리주의자>에서 우리 삶의 뿌리에 놓인 ‘제일 큰 고통’을 직시하며 세상의 ‘신선한 아침’을 노래한다. 부산일보 DB

부산 중앙동에서 인문학 북카페 ‘백년어서원’을 꾸리는 김수우(62)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뿌리주의자>(창비)를 냈다. 이 시집에서는 ‘시로 꿈꾸는 혁명’이 짙게 묻어난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침’이다. ‘백년어’는 ‘백 년을 헤엄쳐갈 백 마리의 물고기’라는데 우리 삶의 지혜를 상징하는 그 물고기들이 삶의 뿌리에 닿아 새로운 세상을 꿈꾸자는 것이다.

‘혁명’, 그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섭고 큰 단어인가. 혁명 열기가 한국 사회를 사로잡았던 1980년대에 그는 13년여 간 저 멀리 아프리카 모리타니,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등지에서 살았다. 아마도 그 거리감 덕에 그는 ‘혁명’을 새롭게 꺼내들 수 있는 거 같다.

김수우 시인 ‘뿌리주의자’ 출간
깨진 화분서 겨울 견딘 동백처럼
신선하고 희망찬 새 아침 호명

‘뿌리는 안다. 이상이 현실을 바꾼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세계를 업고 있다는 것을.’(‘시인의 말’ 중에서) 뿌리는 근본적이기에 곧 혁명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왜 혁명이 필요한가. 우리 삶이 ‘자본의 돌멩이에 으스러’(86쪽)지고 ‘천민 자본’이 ‘발악’(68쪽)하기 때문이다. 또 ‘가난은/수천수만겹으로 되어 있’(31쪽)기 때문이다. 시는 새긴다. ‘적은 화폐, 화폐의 제국이다’(45쪽). 천민 자본의 발악과 짝하여 ‘평화에 닿기가 부지깽이가 걷는 일보다 어렵다’는 ‘백두대간의 허리 디스크’(34쪽), 즉 분단이 있다. 그는 ‘모든 살인과 이 땅의 분단에 나는 책임이 있네’(76쪽)라고 노래한다.

그의 시는 의지적이고 이지적이다. 너무 큰 ‘추상적 고통’을 앓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추상적 고통은 ‘생기 없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제일 큰 고통’이라는 걸 그의 시는 일깨운다. 제일 큰 고통이 뿌리의 고통이다. 그래서 ‘뿌리주의자’이다. 뿌리의 고통은 심장이 고통이기도 하다. ‘심장이 검은 잉크로 가득 차고서야/시가 태어나는구나’(21쪽). 뿌리에서 시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의 뿌리는 영도다.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영도 앞바다가 제 문학의 심연”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 곳곳에서 영도가 신화처럼 나온다.

‘싸우다 머리끄덩이 오지게 잡힌 다음 날/아침엔 용왕을, 저녁엔 마고할미를 섬기던 엄마는/공동수돗가 앞에 굿판을 차렸다/(중략)//엄마가 빌던,/무당이 놀던,/뛰어넘기에 나도 열중한다’(24~25쪽). 영도는 앞바다의 용왕과 봉래산의 마고할미를 아침저녁으로 번갈아 섬길 수 있는 신화의 섬 같다. 엄마가 빌던 그 소망, 무당이 놀던 그 제의처럼 시인은 일종의 ‘뛰어넘기’에 열중하는 것인데, 시를 통해 이 세상 뛰어넘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 뛰어넘기가 닿는 그곳을 시인은 ‘아침’이라고 부르고 있다.

‘깨진 플라스틱 화분에서 겨울을 버틴 어린 동백을 아침이라 부르자 ‘옥황장군’ ‘용궁대신’ ‘서보살’ 점바치 골목 간판들을 아침이라 부르자 누군가의 가난, 누군가의 혁명이 네 거름이었다면/그래 거기를 아침이라고 부르자//(중략)/시인의 가난한 골절상도 다 아침이라 부르자 아침이라는 호명으로/우리가 아침이 될 수 있다면’(36~37쪽).

우리의 새 생명, 희망, 소망, 아픔, 의지, 혁명이 새롭게 피워올린 그것을 ‘아침’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이렇게 신선하고 희망적인 단어였던가. 아, 아침!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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