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욕망의 대상으로 변해 버린 땅, 비극 잉태
대지/에밀 졸라
“그날 아침 장은 푸른색 씨앗 주머니를 배에 차고(중략) 밀알 한 줌을 집어 세 걸음마다 허공에 흩뿌렸다.”
에밀 졸라의 <대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 앞에 펼쳐진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대하는 듯하다. 삼종 기도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올리는 밀레의 그림 ‘만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땀을 흘린 만큼 보답한다는 진리를 믿는 인간의 행위를 모두 그리고 있다. 그 진리가 이뤄지길 염원하는 묘사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도 한결같은 동작으로 씨앗을 뿌리려 평야를 가득 메운 파종꾼들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농촌의 생명력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이 작품은 수많은 비극을 안고 있다. 땅과 사람, 사람과 사람 간의 긴장과 갈등을 묘사했을 것이란 상상은 웬만한 독자라면 능히 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문제는 그 내용의 강도이다. 존속 살해, 근친상간 같은 금기를 여과 없이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는 안정된 이미지의 평야를 모험과 불안을 안은 바다의 출렁거림으로 다가오게 한다. ‘대지’가 출간되자마자 비난 성명서가 잇따라 나올 정도였다.
그 비극의 원인은 땅이 욕망의 대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에밀 졸라는 살인을 해서라도 농토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가감 없이 알린다. 부동산 투기란 중병을 앓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같은 제목인 펄 벅의 ‘대지(The Good Earth)’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에밀 졸라 지음/조성애 옮김/문학동네/688쪽/1만 8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