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생활 위로가 된 고양이, 은혜 갚은 고3
[행복한 나눔] 경남여고 길냥이 수술비 모금
“웬만한 선생님보다 경남여고 경력이 많은 ‘경남이’는 우리 학교 어르신으로 통해요. 모의고사 문제를 찍을 때면 경남이가 그날 고른 간식 5개 중에 하나를 떠올려 번호를 선택했어요.”
부산 동구 수정동 경남여고에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윤아(19) 씨에게 학교에 서식하는 고양이 ‘경남이’는 친구 이상의 존재다.
학교 마스코트 ‘경남이’ 앓자
학생들 단톡방 통해 모금 운동
하루 새 175명 258만 원 모아
“치료 끝내고 남은 돈 기부 예정”
입학 때부터 김 씨는 물론 여고생들과 남다른 우정을 쌓아 왔던 경남이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몸 상태가 나빠졌다. 그해 8월 연달아 몰아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이후 살이 급속도로 빠지고, 건식 사료는 입에 대지도 않기 시작했다. 경남이는 올해 8살로 추정돼 사람으로 따지면 40대 후반. 경남이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는 행동이었다.
고 3인 김 씨는 수능을 마치자마자 경남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지난 3일이었다. 동물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니 경남이 상태가 심각했다. 송곳니는 부러졌고, 구내염 탓인지 잇몸도 벗겨졌다. 어금니 일부는 이미 녹아내렸다. 동물병원에서는 당장 경남이의 모든 치아를 발치할 것을 권했고, 수술비와 입원비 등 전체 치료비는 250만 원으로 추산됐다.
경남이를 아끼던 김 씨지만 혼자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어서 친구들과 함께 수술비를 모아보기로 했다.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동기 성고은(19) 씨의 힘을 빌려 만화 형식의 포스터를 제작하고, 반 단체 대화방에 먼저 도움을 청했다.
혹시나 하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곧바로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날 오후 4시 반 대화방에 포스터와 모금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친구들의 공감 답글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1반 6반 (포스터를)보냈소” “반장 톡에 보낼게” “경남이에게 진심인 우리 학교 너무 좋다” “오늘 아이스크림 사서 돈 없으니까. 딱 기다려, 내가 월요일에(줄게)” “1, 2학년들도 아마 봤을거야 많이 모이면 좋겠다”….
학생회도 나섰다. 학생회는 공식 SNS에 “경남이 입원 수술 비용에 필요한 기부금을 받고 있다”며 “기부로 모인 돈은 오로지 경남이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할 것이며 사용 내역은 철저하게 공개할 것이다”고 알렸다.
그 결과 경남여고 학생 175명은 약 10시간 만에 경남이 수술비로 258만 7685원을 모았다. 어른들 도움 없이 학생들이 이뤄낸 경이로운 결과였다.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몇몇 선생님들도 힘을 보태 모금액은 지금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경남이는 지난 3일 입원해 7일 앞니와 아래 송곳니를 제외한 치아 12개를 뽑는 수술을 받고 회복하고 있다. 김 씨는 “포스터를 벽에 붙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목표액을 다 모았다”며 “다행히 모든 이를 발치하지 않고 일부는 남겨두게 돼서 수술비가 190만 원으로 줄었다. 치료가 끝나고 남은 비용은 기부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부산교육청도 학생들의 선행 이야기를 전해 듣고 격려 방안을 찾고 있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내용을 전해 듣고, 모금에 나선 학생들을 격려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