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6. 5시간 헤매다 찾은 수달,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feat. 수달)
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을 가로지르는 도심 하천 온천천. 평화롭던 그 하천에 생태계 최강 포식자가 나타났다? 낙동강 일대를 엉망으로 만든 뉴트리아가 온천천까지 점령한 것일까? 다행히도 온천천에 나타난 야생 동물은 다름 아닌 '수달'. 천연기념물 제330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귀한 몸'이 온천천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실 온천천에 수달이 있다는 '썰'은 꽤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 그러나 지난달 26일 오후, 부산시민들에게 포착된 수달은 조금 편해(?)보였다. 온천천을 제집 안방처럼 누비며,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이 포착된 것. 그래서 맹탐정이 직접 온천천으로 나가봤다. 맹탐정은 수달은 만날 수 있었을까?
<현장검증>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2021년 12월, 온천천에는 수달이 있을까?
온천천을 자주 걸었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열대야를 즐기기 위해 온천천을 걸었다. 그러나 수달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수달을 찾기 위해 도시철도 1호선 구서역에서 수영강 쪽으로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피곤하면 된다.'
그래도 단서는 있다. 어느 정도 수심이 확보되어 있어 잉어, 붕어 등이 몰리는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즉, 수달의 먹이가 있는 곳을 찾는 게 우선이다. 또 수달이 만약 온천천을 서식지로 선택했다면 물가의 나무 뿌리나 바위 틈 같은 은폐된 공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한국수달연구센터에 따르면 수달은 다른 족제빗과 동물과 달리 발톱이 약해 스스로 땅을 파 은신처를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 눈이 닿지 않는 곳을 자세히 봐야한다. 국내 바다나 강에 사는 것은 모두 같은 종의 수달이다. 세계에는 현재 13종의 수달이 있는데 국내에는 '유라시아 수달'로 불리는 1개 종만이 서식한다. 수달은 기본적으로 야행성 동물이다. 낮에는 은신처에 숨어 있다가 해가 지고 나면 먹이를 찾으러 나온다.
오후 5시 30분께, 본격적인 수달 수색에 들어갔다.
왜가리·오리는 많았지만, 수달은 볼 수 없었다.
온천천을 헤매고 다닌 지 3시간이 넘었다. 살짝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풀이 움직였다. 수달일까? 다시 쳐다보니 왜가리다. '첨벙' 물소리가 들렸다. 수달이 먹이 사냥을 하며 낸 소리일까? 물소리의 정체는 오리였다. 수달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너무 안일하게 접근한 탓이다.
수달의 행동 특성을 제대로 몰랐다. 수달은 강을 끼고 생활하는 영역 동물이다. 수컷의 경우 15km, 암컷은 7km 정도 행동반경을 갖는데 온천천은 15.62km. 최상류를 비롯해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곳을 제외하면 온천천 전체가 수달의 영역인 것이다. 어디 있을지도 모를 수달을 찾는 것은 순전히 운이 따라줘야 할 문제였다.
자기 영역에 다른 수달이 들어올 경우 '전쟁'이 일어난다. 작고 귀여운 입과 눈, 온순해 보이는 외모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수달의 실제 성격은 포악한 편이다. 때문에 온천천에 있는 수달은 많아야 2~3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곳은 온천천이지만 기록을 찾아보면 수영강변 선착장 일대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수색 범위를 더 넓혀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온천천은 수달이 살기 적합한 환경일까?
수달은 건강한 하천의 상징이다. 수달이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도심 하천의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막상 맹탐정 일행이 온천천을 다녀보니, 수달이 살 만한 1·2급수라는 의견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구서역 인근 다리 밑 온천천에서는 물거품과 함께 하수구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에 눈을 찌푸렸다.
제보받은 영상에서는 물장구치는 수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10일 촬영일 기준, 온천천에서 수달이 놀(?)만 한 수심은 찾기 어려웠다. 이 말은 수달의 먹이가 되는 어류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온천천 하류 수영강과 만나는 지점에까지 이르러서야 충분한 수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침 부산대역 인근 온천천 산책로에서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온천천 유지 용수가 공급 일시 중단'이라는 플래카드를 확인했다. 수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아닐까?
시민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먼저 '수달은 있다'에 동의하는 쪽. 온천천에서 만난 한 시민은 "온천천 일대를 자주 산책하는 데 종종 봤다"며 "2~3마리가 같이 헤엄치는 모습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더이상 수달이 온천천을 찾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한 시민은 "요즘은 온천천에 유량이 줄면서 이제는 안 오는 것 같다"며 "온천천이 아닌 수영강, 광안리 쪽으로 옮겨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탐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동래역 부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수달은 오후 12시가 넘어야 나온다"며 오후 5시부터 수색을 시작한 맹탐정 일행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구서역에서 수색을 시작해 동래역에 도착했을 즈음 만난 시민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매일 온천천을 찾는다는 그는 "도시철도 온천천역 근처, 보행로와 좀 떨어진 어두운 구간에서 자주 보였다"며 구체적인 장소까지 언급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구서역으로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온천장역 4번 출구, 그 아래를 지날 때였다.
일행과 이야기를 하며 걷던 중 무심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어! 어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졌다. 보행로와 꽤 가까운 곳에 왜가리도 오리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생물체가 있다. 쥐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개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수달이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유선형의 몸통 길이는 50cm 정도, 꼬리까지 합하면 1m는 넘어 보였다. 물에 젖은 짧은 털이 어두운 온천천에서도 반짝였다. 얼굴 주위에는 수염이 길게 돋아있다. 울음소리 같은 건 들을 수 없었다.
수달의 행동을 조심스레 살폈다. 수달은 카메라를 의식한 듯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곧 온천천 흙바닥을 벗어나 시멘트로 만들어진 하천 가장자리로 올라갔다. 수달은 온천천 하류로 계속 내려갔다. 맹탐정 일행도 조심스레 수달을 따라갔다.
수달을 여기서 마주치다니,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수달을 만난 곳은 물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곳이다. 발을 디디면 물이 발등에도 올라오지 않는 곳이다. 당연히 먹이도 없고, 수달이 몸을 숨길 은신처가 있는 곳도 아니다.
한참을 내려가던 수달은 보행로 밑으로 통하는 좁은 수로로 몸을 피했다. 멀리서 나오는지 지켜봤다. 그러나 수달은 다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그곳이 은신처일까? 3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다.
<사건결말>
(*맹탐정 개인 의견임. 부산일보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온천천에 수달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수달은 온천천을 보금자리라고 여기고 있을까?
불과 며칠전, 시민이 제보한 수달의 모습과 달리 우리가 만난 수달은 다급해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수달은 온천천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온천천은 생태하천으로 꾸며졌다. 부산시민들에게 도심 속 쉼터로 애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수달이 생존하기엔 부족한 곳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수면 중간, 수달들이 사람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은신 공간이 거의 없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인공적으로 모래톱 등을 조성해 제공하기도 한다. 전남 구례군, 대구 달서구 등이 그렇다. 굴을 파기 힘든 수달을 위해 먹이를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은신처, 즉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 관계자는 "온천천과 같은 생태하천에 수달의 은신처를 만들어준다면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온천천의 조성 환경은 수달에게 썩 달갑지 않다. 갑자기 하천 물길을 틀어막은 커다란 징검다리, 주변 식생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시멘트 재질의 수변, 야행성 동물인 수달이 살기에는 대낮처럼 밝은 조명까지. 온천천은 '사람들을 위한' 생태하천이지, 동·식물을 위한 생태하천은 절대 아니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지난해 1마리가 보이다가 최근 2마리로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수달이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도망치기 바빴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살기 힘든 온천천을 떠나는 중은 아니었을까?
다시 온천천으로 돌아온 수달과 공존을 생각해야할 때다.
제작=정수원 PD·이지민 에디터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