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4000명 관객 만나는 나훈아 “‘돈 떨어졌냐’는 반응 알지만예…”
10일부터 벡스코서 사흘간 총 6회 공연
관객 앞에 선 나훈아, ‘코로나 팬데믹’ 언급 눈길
“고향 부산서 공연 의미있어…방역 철저히 할 것”
“공연을 한다니까네 ‘나훈아 점마 돈 떨어졌나’ 등 안 좋은 반응이 있던 걸 내 압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 (수입이 끊겨) 공연 관계자들이 힘들어 죽을라카거든요. 내가 이걸 잘 해내면 다른 사람들도 조심해서 잘 하지 않겠습니까?”
10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나훈아 어게인 테스형’. 흰 옷을 입고 무대 중앙에 선 가수 나훈아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그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세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 의식한 듯 공연 중간중간 “단디하자!”며 방역을 강조했다.
나훈아는 “부산 동구 초량2동 452번지가 내 고향”이라며 “다른 무대에 못 서도 내 고향 사람들은 꼭 만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신 오늘은 입 열면 침 튀니까 입은 다물고 ‘음’으로 대신 하자”고 신신당부했다. 한 칸씩 띄어 앉은 관객 4000여 명은 ‘음!’과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다.
공연 입장 전에는 1시간 가까이 소독과 체온 체크, 인증 ARS, 방역 패스 확인이 이뤄졌다. 현행 방역 지침상 콘서트장을 찾는 관객은 접종 완료자 이거나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지참해야 한다. 벡스코 제1전시장 앞은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과 콘서트 용품을 파는 상인들로 붐볐다. 북구에서 온 김순자(67·가명) 씨는 “공연을 보러 오기 전까지 주위에서 말려 많이 고민했지만, 꼭 한번 보고 싶어 왔다”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보다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훈아의 부산 공연은 2019년 ‘나훈아 청춘어게인-부산’ 이후 2년 만이다. 매년 전국 순회 공연에서 부산을 찾았던 그는 지난해 말 공연을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일정을 취소했다. 올 8월에도 ‘나훈아 어게인-테스형’ 콘서트로 부산 관객을 만나려고 했으나 코로나 재확산에 공연을 이달로 연기했다. 나훈아는 “2달 전에 대구에서 많은 분 모시고 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함성 대신 반드시 ‘음!’이라고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나훈아는 일흔다섯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힘 있는 무대를 펼쳤다. 흰 마스크가 그려진 무대 장막이 걷히자 파란 배경 위로 별이 쏟아졌다. 잠시 뒤 발레리나가 나와 춤을 추다가 무대가 어두워지자 천사 날개가 배경에 등장해 펄럭였다. 나훈아는 흰옷을 입고 날개 앞에 등장해 2002년 곡 ‘아담과 이브처럼’을 열창했다. 그는 풍성한 성량과 카리스마로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무대를 장악했다.
두 번째 노래는 1982년 곡 ‘잡초’. 광택 있는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한 나훈아가 이 노래를 마치자 무대 양옆에서 오토바이가 올라왔다. 180도 바뀐 분위기를 즐기던 나훈아는 자신의 인기곡 ‘사내’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관객들은 조용히 박수를 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공연을 관람했다. 나훈아가 1977년 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땐 뒷 화면에 1986년의 그가 나왔다. 붉은 벨벳 재질의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선 흰 머리의 나훈아는 KBS 영상 속의 검은 머리 나훈아와 노래를 주고받으며 함께 불렀다. 나훈아는 옛 생각이 나는 듯 중간중간 영상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난해 공개한 ‘명자!’를 열창한 뒤엔 무대에서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옷 갈아 입는 중입니다’란 자막을 배경 삼아 나훈아는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신곡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를 부를 땐 결혼식 퍼포먼스를 했고, 1994년 노래 ‘영영’을 부를 땐 ‘영엉 못 잊을거야’ 부분의 호흡을 40초 정도 길게 늘였다. 이때 일부 객석에서 함성이 나오자 주변 관객들이 주의를 주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노래를 잠시 멈춘 나훈아는 중앙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감격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는 “부산 동구 초량2동 452번지 7통 3반이 내 고향”이라며 “오늘 분명 주변에서 ‘너무 위험하니까 가지 마이소’ 또는 ‘니 위험한데 뭐한다고 가노’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을 무릅쓰고 오신 분들인데 우리가 단디 조심하겠다. 다 내려놓고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이날 나훈아는 부모님 사진을 공개해 관객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내년이면 가수 데뷔 55년인데 내 고향 부산이니께네 처음으로 보여드린다”면서 “저 아주매가 ‘이 아 놓고 미역국 묵은 내가 미찼지’라고 한 우리 어머니인데 이제 백 살이 다 되셨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동구 초량동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내가 우리 부산이니께네 이런 이야기도 다 한다. 그제?”라고 말해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나훈아는 이날 여러 번 코로나19 팬데믹을 언급해 주목받았다. 그는 “처음에 코로나19라고 해서 ‘19살 이상만 먹는 맥주가 새로 나왔는갑다’ 했다”며 “2주, 2주하면서 2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여러분, 안 해 본 것 하시고, 안 묵어본 것 묵어보고 안 가본 곳 가보이소. 이렇게 가는 세월이 얼매나 빠른지 세월이 벌써 저~만큼 먼저 가있는기라.”
그는 “코로나19 이후로 공연 관계자들이 많이 힘들어졌다”며 이번 공연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당사자와 그 식구까지 하면 몇십만 명이 된다”면서 “‘행님 너무 힘들다’며 죽을라카는데, 내가 힘은 없고, 조심해서 공연을 잘 여는 것밖에 해줄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 날 홀로 두고/여보 당신을 사랑하오/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영원히 영원히 사랑하오’
‘홍시’와 ‘남자의 인생’ ‘자네’를 연달아 부른 나훈아는 잠시 뒤 갈색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타났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대표곡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뒷부분 가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에서 혼자 기타나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할 때가 많다”며 “나이를 먹으니께네 울렁증이 생기는지 도저히 이 노래의 끝을 못 부르겠더라”고 말했다. 기타 줄을 튕기며 노래를 시작한 나훈아는 원곡의 마지막 가사인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뒤에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오’를 추가해 불렀다. 관객들은 ‘음!’과 박수를 보냈다.
이날 나훈아는 자신의 대표곡 ‘홍시’와 ‘만남’ ‘청춘을 돌려다오’ ‘바보처럼 살았군요’ ‘테스형’ 등 25곡을 불렀다. 기타를 치며 노랫말을 바꾸어 부르기도 했고, 민소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열정 넘치는 무대를 꾸며 관객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테스형!’과 ‘징글벨’ 무대를 마친 나훈아는 관객들을 둘러보며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 나훈아는 “내가 노래를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라며 “그래서 내겐 이 시간이 너무나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열려 4시 20분에 막을 내렸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