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내가 낸데!
약 도매업을 하는 A 사장. 하루는 거래처인 한 대학병원의 교수와 지인 B 씨를 함께 만찬에 초대했다. 술이 여러 순배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B 씨는 은근히 불편해지는 것이었다. A 사장은 몹시도 저자세고 교수는 지나치게 거만했기 때문이다. A 사장은 말끝마다 “교수님 은공 덕에…”라거나 “평소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라는 식이라 듣기에 몹시도 민망한 터였다. 자리를 파하고 B 씨는 교수에게 “A 사장의 태도가 불편하지 않았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그 교수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내가 명색이 대학교수이고, 대학도 못 나온 그 사장은 내 덕분에 밥 먹고 사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드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내가 낸데” 하는 풍조의 단면을 보여 준 사례라 하겠다.
우쭐거림이나 거만함이 그 안에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내가 낸데”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꼴불견이다. 보통은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권력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에게 하는데, 권위는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꼴사나운 짓이다. 비슷한 말로 ‘꼰대질’이 있다. 꼰대질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기성세대를 비꼬는 차원에서 벗어나 요즘엔 부당한 행태에 저항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꼰대질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방은 그냥 참고 들어줄 뿐인데도 이를 자기가 옳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또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양 행동한다. 자신의 전문 지식 범위를 넘어선 분야에서도 자기 주장이 옳다고 믿는다. 아는 이는 이들의 행태가 가소로울 따름이다.
최근 부산의 한 대학가 술집에 교수는 입장할 수 없다는 ‘노 교수 존’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술집 입구에는 ‘다른 손님들의 편안한 이용을 위해 정규직 교수님들은 출입을 삼가시길 부탁드린다’는 공지문을 붙였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내가 낸데”라며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른바 ‘진상 손님’의 대부분이 정규직 교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교수들의 항의로 공지문은 뗐지만 ‘노 교수 존’은 계속 유지할 거란다. 교수들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세상 기강 다 무너졌다”며 한탄도 할 테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다. ‘내가 낸데’는 ‘너 같은 게 감히’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한 번쯤 ‘나 같은 게 감히’라고 생각해 보자.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