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절벽’ 중·저신용자 유혹하는 ‘불법 사채의 덫’
최근 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중·저신용자들이 불법 사채에 내몰리고 있다. 또 낮은 이자 등 달콤한 조건으로 접근하는 ‘메신저 피싱‘과 같은 금융사기 범죄에도 노출돼 있다.
최근 직장을 그만 둔 김 모(32) 씨는 지난달 초 생활비가 급해 불법 사채를 사용했다. 김 씨는 직장에 다니던 동안에는 은행 신용 대출을 받아왔으나, 직장을 그만 둔 이후 고정 수입이 없다 보니 1·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채업자에게 일주일 뒤 원금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70만 원을 당일 대출 받았다. 그러나 이날 김 씨가 손에 쥔 금액은 40만 원. 나머지 30만 원은 선이자 명목으로 받지 못했다. 김 씨는 약속했던 일주일 뒤 원금을 갚지 못해 다시 연장 이자 30만 원을 추가 납부했다. 그러나 원금을 재차 갚지 못하면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결국 원금을 초과했다. 김 씨의 금리는 연 이자율로 환산하면 2600%에 이른다.
정부 강도 높은 부채 관리 방침
신용등급 10등급 중 4등급 이하
1·2금융권서 대출 받기 불가능
불법 사채 꾐에 급전 대출 예사
원금보다 더 많은 이자 물어 줘
부산경찰, 지난달 불법 집중 적발
김 씨와 같은 중·저신용자들은 금융 신용등급 전체 10등급 중 4등급 이하의 사람들로 전체의 절반 정도가 해당된다. 이들은 최근 강도 높은 부채 관리 상황에서 1·2금융권에서 평균 금리로 대출을 받는 게 사실상 어렵다.
이렇다 보니 중·저신용자들은 결국 불법 사채의 ‘먹잇감’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들어 부산경찰청의 불법 사채 관련 단속 건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총 71건으로 이중 20~30%가 지난달에 적발됐다. 또 이달 들어 고금리, 폭력 등 불법 사채와 관련된 신고나 민원이 예년보다 증가하고 있다. 합법적 대부업체로 이뤄진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본 협회 소비자센터에 접수되는 불법 사채 관련 피해나 문의 건수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부쩍 증가했다“며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중·저신용자들이 급한 나머지 불법 사채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제 침체가 지속되면서 불법 사채 관련 피해도 급증했다. 은행권 대출이 한도에 다다른 중·저신용자들이 주로 불법 사채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불법 사채 피해는 총 5160건으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었다. 현재 대출 문턱이 막힌 상황에서 중·저신용자들이 기존 사채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를 쓰는 악순환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중·저신용자들은 불법 사채를 피하려다 오히려 메신저 피싱 등 범죄를 당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메신저 피싱은 악성 앱을 깔도록 유도해 개인 정보를 탈취, 피해자 계좌의 잔액 이체나 대출 등을 통해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메신저 피싱은 ‘최저 연 1.5%의 이자율로 2억 원 이내에서 대출한다’ 등 ‘달콤한’ 조건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발송해 피해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올해 상반기 각종 메신저 피싱 피해액은 46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6배에 달했다. 부산 경찰도 올 1~11월 총 1584건의 피싱 범죄를 적발했다. 피해액은 405억 원이다. 피해자 대다수가 신용등급이 낮아 급전이 필요했던 중·저신용자들이었다.
중·저신용자의 ‘대출 절벽’이 사회 문제로 확산되자, 정부는 내년부터 이들에 대해 대출 문턱을 낮출 것을 논의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정책서민금융 상품에 대해서 최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대출 중단이 없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환·김 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