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여야 공존, 협치 노하우 쌓을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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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사회부 행정팀장

현재의 ‘야당 시장, 여당 시의회’ 구도는 부산에 다시 안 올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방자치 부활 이래 30년 동안 일당독점 구도를 이어온 부산이 제한적이나마 협치의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부산은 협치의 경험을 쌓지 못한 도시다. 역대 지방선거를 돌아봐도 그렇다. 1991년 1대 부산시의회를 시작으로 7대 시의회까지 보수 정당이 시와 시의회를 싹쓸이했다. 지방권력 내 협치의 기회 자체가 실종된 기간이었다.

오랜 일당 독점 탓 견제 없는 도시로
시·시의회 여야 구도는 하나의 기회
법 개정 따른 지방 권한 확대 앞두고
여·야 협치 통한 자치 역량 키워야

공교롭게도 일당 독점이 유지돼 온 도시는 저마다 쇠퇴의 길을 걸었다. 부산도 마찬가지로 시와 시의회에선 보수 정당이 30년 가까이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 운영되며 폐해가 상당했다. 모든 걸 견제 세력 부재 탓으로 돌릴 순 없다 해도 이 시기 부산은 창의성과 역동성을 잃어갔다.

시민들 사이에는 변화 욕구가 끓어올랐으나 시와 시의회는 이를 수용하는 데 둔감했으며, 또 외면했다. 시의회 역시 무력감이 컸다. 시에 같은 당 단체장이 자리 잡고 있으니 견제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했다. 1~7대 시의회까지 시의회의 의안 가결율이 90%를 훨씬 넘었다고 한다.

8대 시의회 들어 시와 시의회 주도 세력이 처음으로 진보 계열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지방권력이 뒤집어진, 당시 선거 결과는 격변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협치의 관점에서는 한 정당이 시와 시의회를 독점하는 구도는 그대로였다. 넓게 보면 민주당 지방정부는 시민사회를 포용하는 협치를 시도했으나 경쟁 정당까지는 아우르지 않았다.

사상 처음으로 시와 시의회 주도 세력이 서로 갈리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찾아왔다. 전임 시장의 불미스러운 중도 퇴장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4월 1년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부산에도 특정 정치 세력이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하는, 협치 구도가 형성됐다. 이미 그 기간이 절반 넘게 흘렀지만 지금까지는 경험 부족과 두 정치 세력의 간극만 재확인하면서 허송세월했다면 과장일까.

그러나 시와 시의회는 그동안 치열한 협치 과정이 아닌, 서로를 외면한 채 손쉬운 ‘타협’의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다. 부산교통공사와 부산도시공사 사장 임명을 보자. 시는 시의회 인사검증을 받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결국 거머쥔 권한을 고스란히 행사하며 임명을 강행했다. 시의회도 인사검증을 거쳐 ‘부적격’ 판단을 내렸으나 검증의 칼끝은 무뎠고,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많지 않았다.

내년 예산을 둘러싼 갈등도 비슷한 구도로 흘러갔다. 개인적으론 시와 시의회가 더 치열하게 갈등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싸움은 시시하게 끝났다. 시의회는 칼날을 마음껏 휘두르며 이른바 ‘박형준 예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양도시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했고, ‘15분 도시’ 예산,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조성 예산 등은 시 기대에 턱 없이 못 미치는 쥐꼬리 예산만 남겼다.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시는 예산 협의 과정에서 협치의 시늉만 취했을뿐 혼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 시의회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레짐작과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판이 바뀔 것이라는 계산속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의회로선 시장 공약 사업 예산 대부분을 막았으니 ‘예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뒤로 실속을 차리는 행태가 아쉬웠다. 삭감 예산을 지역구 사업이나 민주당 지지 성격의 단체에 몰아주는 선심성 예산이 적지 않았다. 두 세력이 협치의 과정을 피하려다 당리당략으로 시민 예산을 갈라치기 한 꼴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협치인가. 내년부터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권한과 역할이 대폭 확대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큰 흐름을 볼 때 지방도 그에 걸맞은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으로 보여야 지방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중앙의 ‘못된’ 선입견도 이겨낼 수 있다.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거대 양당이 매번 권력을 넘겨주고 이어받는 ‘시소 게임’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뒤섞여 지역 발전을 논의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부산도 협치의 노하우를 충분히 쌓아가야 가능한 일들이다.

이번 여야 공존 구도가 갈등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낸 부작용 사례가 될지, 협치의 모범 사례가 될지 시와 시의회가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곧 진행될 시 산하 공공기관장 임명을 놓고 두 정치 세력이 어떤 길을 걸을지부터 시민들은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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