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울산 원전 핵폐기장화 시도, 용납 못 한다
정부가 최근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했다. 지난달 여당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추진에 이어 정부까지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의 중장기 로드맵에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을 명문화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역주민과의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부산·울산 같은 원전 소재 지역을 사실상 핵폐기장화하려는 저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부산·울산은 국내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이다. 이런 위험에 더해 맹독성 강한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부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 명문화
원전 밀집에 핵폐기물까지 떠안다니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면 약 1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원전을 머리 위에 안고 사는 원전 지역 주민이라면 폐연료봉의 영구 보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번 2차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 관리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한다’고 못 박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시설을 확보하는 일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난제라는 점에서 원전 소재 지역을 실질적인 핵폐기장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부산과 울산 같은 원전 밀집 지역은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런데도 사람의 통제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핵폐기물까지 해당 지역이 보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도 없고, 그동안 논의되던 최소한의 보상 절차도 없이 모든 부담을 원전 소재 지역에 전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원전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314만 명의 주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 것인지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다. 원전으로 생산되는 에너지를 국민 모두가 사용한다는 것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책임 역시 모두에게 있다는 뜻이다. 핵폐기물 처리 시설을 원전 지역뿐 아니라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건설하자는 요구가 터무니없는 주장일 리 없다.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이르러 탈원전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번 핵폐기물 기본계획에 따라 고리원전 1호기의 해체 작업 역시 지연이 불가피하다. 최근 고리원전 1호기 해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원전해체연구소 건립 사업도 사업비가 줄어들고 기능이 축소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나아가 부산·울산의 핵폐기장화가 동남권 메가시티를 가로막는 심대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더욱 큰 우려를 낳는다. ‘사용후핵연료의 원전 부지 내 저장’을 성급하게 명문화한 정부 계획은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 의견의 적극적인 반영에 서둘러 나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