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45. 위안이 필요한 존재들에게, 윤석남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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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1939~)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여성주의 작가이다. 미술 작업과 더불어 여성주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성 미술가로서의 역할을 실천해 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윤석남은 결혼과 출산 이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의 미술 유학을 마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치게 된다.

윤석남의 작업은 ‘여성’이라는 주제가 관통한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육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의 삶 그리고 작가가 직접 겪은 여성으로서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자전적 경험들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지향하는 생태주의적 관점으로 연결되면서 작가의 작업세계와 형식들을 더욱 확장시켰다.

또한 윤석남은 역사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을 그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는 이 작업 중 일부를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전시와 동명의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도 수록됐다.

이번에 소개하는 ‘108’은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관심이 묻어나는 조각 작품이다. 윤석남은 1025마리의 유기견들을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후 이들의 삶을 나무 조각에 각인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깎고 다듬는 것부터 유기견의 모습을 그려 넣는 일련의 제작 과정들은 버려진 생명들에 대한 애도의 행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유기견에 대한 메시지와 더불어 생명에 대한 존엄이 결여하는 현대의 인간상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한다. 작품 속 유기견의 눈에서 우리는 버림받은 아픔과 슬픔, 주인들에 대한 그리움 등을 발견하게 된다. 불교의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이라는 숫자는 버림받은 생명들의 해탈을 소망하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08’은 오는 2월 20일까지 진행되는 ‘BMA 소장품 보고’ 전시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

김민정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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