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맞춤형 신발로 편하게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백호정 선형상사 대표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으면 일단 움직이기가 힘들다. 피곤함도 빨리 온다. 신발 사이즈는 하나지만 사람의 발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발등이 높은 사람도 있고, 발 볼이 넓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이즈를 조금 더 크게 사서 신은 뒤 끈을 조이거나, 꽉 맞게 산 뒤 늘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방법으로 가장 편한 신발을 찾는다.
하지만 발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발 모양 자체가 비장애인과 다른 경우가 많아 시중에 나온 신발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 그래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반 신발을 신는다. 이 때문에 이동하는 거 자체가 고역이다.
장애인 특수신발 만들어 사회 봉사
복지 증진 기여 부산시장상 받아
삼성 이건희 회장 신발 제작하기도
선형상사 백호정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잘 알았다. 백 대표는 “부친이 구두 명장이었는데 발이 불편한 장애인이셨다. 기성품 중에 맞는 신발이 없어 스스로 신발을 만들어 신으셨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발이 불편한 장애인을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외국 유명 신발업체에 라스트(발 모양의 틀)를 납품하던 사업이 안정된 후 더 커졌다.
이에 백 대표는 2000년부터 장애인 신발을 생산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3D 스캐너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의 발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기도 했다.
백 대표는 “장애인 특수신발은 사실 팔면 팔수록 적자였지만 내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러한 노력을 주변에서 많이 알아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백 대표는 특수신발을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장애인 발에 맞춘 신발을 나누기도 했다.
장애인 신발 나눔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던 백 대표는 지난 7일 장애인 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부산시장상을 받았다. 백 대표는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많은 봉사를 했지만 최근에는 국제구호단체 굿피플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복지 패러다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백 대표는 “그동안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 명문 장수기업상 등 기술 관련 상은 많았지만 부산시장상은 그동안의 숨은 노력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형상사가 가진 기술의 우수성과 백 대표의 봉사 정신을 알 수 있는 일화도 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발등이 높아 평소에 구두는 물론 업무 중 슬리퍼 신는 것도 매우 힘들어했다.
이 회장의 측근들은 항상 이 회장의 발 건강에 신경 썼는데 백 대표의 기술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백 대표는 이 회장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을 만들어 이 회장에게 줬는데 ‘이탈리아 명품보다 낫다’며 이탈리아 명품 가격으로 신발값을 지불했다.
백 대표는 그 돈을 부산시 지체장애인협회에 기증했고 이 회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즐겨 입는 명품 양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백 대표는 최근에는 비장애인들도 편안한 발을 위해 맞춤형 신발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백 대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다.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나눔의 방식을 찾아서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