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광기를 통해 위대해진다, 그게 운명”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로제 폴 드루아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현재로 살아 돌아와 이 시대 사람에게 지혜의 말을 건넨다고 가정하자. 과연 그 말에 귀 기울이며 고마워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후유증이랄까, 워낙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이다보니 초지성인이라고 해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시대 사정이 이렇다보니 급기야 지성은 무의미한 낡은 것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나마 사명감에 불타던 지식인들도 테러를 방불케하는 잔혹한 댓글, 정신병증을 의심케하는 반지성적 공격에 질려 몸을 감추고 말을 아낀다. 은 이런 시대 상황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할 말은 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마어마한 직설로 정곡을 찌른다. 한 시간 뒤면 세상과 작별한다는 각오로 썼다는 뜻을 담은 도발적인 제목에서 예감할 수 있듯이 “듣고 싶은 사람만 들어라, 어차피 제대로 듣지도 않을 테지만…”이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194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로제 폴 드루아는 내심 다정하고 섬세하다. 굳이 대중의 언어를 선택해 친절하게 철학이 추구하는 본질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한다.
행복한 무지함, 무지에 대한 찬양 등
23가지 주제에 저자 생각 담아 내
광기를 큰 힘 가진 긍정적 의미로 봐
“이성도 그 자체가 광기의 표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책 한 권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하다. 책을 들여다보자. 우선 목차부터 예사롭지 않다. 진지한 생각의 유희에 빠져봅시다, 행복한 무지함과 무력한 앎, 인간은 수많은 생각과 욕망이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무지에 대한 찬양, 진리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인간은 광기를 통해 위대해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다는 것 등 저자는 23가지의 주제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글과 문장, 행간에 담긴 저자의 유머와 반어법은 의미를 더욱 명쾌하게 전달한다.
‘인간이라는 미친 원숭이들, 자기 운명의 기이함을 느끼지 못하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그 기이함을 밝힐 정도로 충분히 현명하지는 못한, 불쌍하지만 같은 종들 사이에서는 위엄을 갖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주 놀라운 동물들, 형제 살인자이며 범죄의 사도들, 나는 지치지도 않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작가는 인간은 광기를 통해 위대해진다고,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한다. 이성도 그 자체가 광기의 표출이라고 밝힌다. 인간이 완전하게 이성의 지배 속에 살아갈 수 있으며, 모든 비이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광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광기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광기는 새로운 환상을 그려내고, 낡은 환상을 다시 그리며, 모순을 부인하고, 심지어 단순한 사익조차 부인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지만 저자는 그 불완전성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며 인생을 한층 더 소중히 여기라고 당부한다.
노철학자가 던지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저자는 숨 가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행복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오랜 사색과 성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팽창하고 증가하는 지식의 오만함에 맞서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상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철학자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무지의 수호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행복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많은 지식을 욕망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해질 거라 믿음 또한 잘못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우리가 비록 완전한 행복을 가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는 무지한 존재지만, 그것이 절망적이거나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무지함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견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남길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새로운 시선과 마음가짐으로 볼 수 있게 될 거라고도 알려준다.
저자는 프랑스 국제철학학교의 교수를 역임하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파리정치대학 등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1972년부터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 에서 철학평론을 쓰는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전작은 등이 있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최린 옮김/센시오/195쪽/1만 28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