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골수종,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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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은 재발이 잦다는 것이 최대 난제로 꼽혀 왔지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면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신호진 교수 연구팀의 최근 연구결과다. 신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부산대병원 제공

A(53) 씨는 2012년 4월 어지러움과 전신무력감을 느껴 대학병원을 찾았다. 골수검사 결과 다발골수종 2기로 진단받았다. A 씨는 4주기 항암치료 후 그해 12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후 큰 문제 없이 지냈으나 이듬해 7월 병원으로부터 재발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A 씨는 벨케이드와 덱사메타손 병용항암제를 6주기 정도 투여받았고, 같은 해 12월 여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공여받는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식 후 A 씨는 주치의로부터 거의 정상 상태에 도달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8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 이상소견 없이 6개월 간격으로 병원에서 검사받으며 지내고 있다.

다발골수종은 골수에서 백혈구의 일종인 형질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혈액암으로, 전체 혈액암의 10%를 차지한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1~2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1800명의 환자가 발생하는데, 혈액암 중에서는 림프종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암이다. 특히 최근 30년간 다발골수종 발생률이 30배 이상 높아질 정도로 매우 가파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 달 23일 90세로 숨진 전두환 전 대통령도 지병으로 다발골수종을 앓아 왔다.


전두환 씨 사망 원인 혈액암 일종
환자 대부분이 50대 이상 ‘고령병’
부산대병원 신호진 교수팀 분석
국제조혈모세포이식학회서 발표
“20%가 10년 이상 생존, 완치 가능
신약·세포치료제 반응 훨씬 좋아져”


■환자 대부분 50대 이상

다발골수종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 국내에서는 50대 이상 연령층이 전체 환자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에 따르면 70대가 전체 환자의 33.2%로 가장 많았고, 60대 28.1%, 50대 18.9% 순이었다.

혈액암이지만 뼈의 병변이 주증상으로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임상 양상을 보인다. 주로 척추, 늑골, 골반 등 하중을 받는 중심축의 통증이나 압박골절을 보인다. 이 밖에 빈혈, 신장장애, 감염 등과 같은 합병증이 흔히 동반된다.

일반적으로 다발골수종은 2~3가지 항암제를 병용한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최근 다양한 신약과 면역·세포치료제 등이 출시되면서 과거에 비해 생존율이 상당히 향상됐다. 하지만 여전히 완치가 어려운 암이다. 백혈병처럼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한 치료법도 시도하나, 치사율이 높아 그간 국내에선 잘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가 상당히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재발하더라도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 가능성도 보였다.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신호진 교수 연구팀은 국내에서 2003년부터 2020년 사이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던 다발골수종 환자 109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동종이식 20% 장기 생존

조혈모세포 이식은 크게 가족이나 타인에게 조혈모세포를 제공받는 동종 이식과 자기 것을 냉동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자가 이식 두 가지로 나뉜다. 보통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은 1차 항암치료 때, 동종 이식은 재발 후 적용한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식 전 항암치료로 잔존질병이 없는 상태에서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잔존질병이 없는 상태를 유지했던 환자들의 경우 평균 생존기간이 10년 이상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특히 재발한 다발골수종 환자 중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은 잔존질병 유무에 상관없이 초기에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했을 때 생존기간이 평균 7년 4개월 정도까지 향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신호진 교수는 “재발성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 경우 20% 정도가 10년 이상 장기 생존함을 확인했고, 완치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불응성 환자에게도 효과

다발골수종의 가장 큰 난제는 재발이 잦다는 점이다. 재발이 반복될수록 치료 효과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1차 치료 후 재발까지 최장 36개월 걸리던 것이 재발 뒤 2차 치료 후엔 18개월, 3차 치료를 받으면 8~10개월로 줄어든다. 4차 치료 뒤엔 4~6개월 정도로 치료효과가 저하된다.

하지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게 되면 환자의 골수 환경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된다. 타인의 면역세포가 환자의 암세포를 공격해 신약·세포치료제 등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아진다.

신 교수는 “이전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한 경우에도 환자의 골수는 새로운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로 채워져 골수 환경 자체가 바뀌게 된다”며 “공여자가 지닌 면역시스템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이전 치료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암세포들도 치료제에 다시 반응하면서 제거된다”고 말했다. 통상 동종 이식을 안 한 불응성 환자는 재발 후 생존기간이 수개월에 그치지만, 동종이식을 시행한 환자의 경우 다시 이전 치료제를 사용하더라도 46%에서 치료반응을 보이고 추가 생존기간도 2년 정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다발골수종이 재발하더라도 최근 출시되는 다양한 신약과 함께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면 양호한 치료 경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1 국제조혈모세포이식학회(ICBMT) 학술대회’에서 발표돼 우수 구연상을 수상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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