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의 요구는 논리적인가
김종열 경제부 차장
약속이 난무하는 계절이다. 5년에 한 번 이 계절이 찾아온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 입장에선 보다 많은 약속이 표로 이어질 듯 하니 여러 약속을 쏟아낸다. 선거철이 아니면 좀처럼 민주주의의 주인 행세를 할 기회가 없는 유권자 입장에선 이참에 여러 약속을 요구한다. 이런 현상은 이번 대선처럼 거대 양측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없을 때 더욱 심해진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아니 많은 경우에 5년 전 약속이 재등장하기도 한다. 5년 전 약속을 한 후보가 낙선했다면 모를까, 당선된 경우에도 5년이 지나면 또 다른 후보가 버젓이 같은 약속을 되풀이한다. 많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혹은 애당초 지키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단 표부터 얻고 보자는 마음에 헛된 약속도 서슴지 않는 후보들이 문제다. 그러나 한편으론 약속을 요구하는 측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요구가 정당한지, 혹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제쳐두고 무조건 약속하지 않으면 표가 없다는 식이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 활성화’ 용역보고회
알맹이 없고 ‘지역균형발전’ 당위만 난무
“대선주자들에 부산 요구 전달”로 결론
요구에 앞서 철저한 부산 논리 만들어야
얼마 전 부산상의에서 부산 블록체인 특구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 보고회가 열렸다. 부산상의가 지역 대학에 의뢰한 용역으로, 보고회에는 부산시, 복수의 블록체인산업협회 등이 참여했다.
이날 가장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가 블록체인청(廳)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 블록체인 산업 관련 정책 마련 및 집행에 여러 정부부처에서 관여하다 보니 업무가 난삽해진다는 지적이었다. 이를 총괄하는 하나의 ‘청’을 만들어 업무를 일원화하자는 것으로, 그 청을 부산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청의 구성은 민관합동기구 형식으로 하겠다고 한다. 청이라면 당연히 정부기관인데, 민관합동이라니. 관련 질의가 쏟아지자, 용역 담당자는 “기관 이름은 가칭일 뿐”이라고 얼버무린다.
특구 사업자 선정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블록체인 특구가 말만 ‘특구’일뿐, 실제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일부 사업자만 혜택을 보는 구조다. 이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처럼 중기부에 집중된 권한을 부산시로 대거 옮겨와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 블록체인청이 만들어진다면, 그 청이 부산에 위치하더라도 엄연한 중앙정부기구다. 앞서 블록체인청에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집중케 해야 한다고 하고선, 이번엔 블록체인 특구 권한을 부산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 모순이다.
용역 보고회는 여러 미진함 속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보고회에서 제기된 여러 요구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자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어차피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에게 부산의 강한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듯했다. 다소 미진한 부분은 추후 다듬으면 그만이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일부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은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당위만 있고 구체적 내용은 없는 보고회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선거철 약속이라는 것이 논리보다 정략으로 좌우되는 것이 많다. 인정한다. 우는 아이(게다가 그 아이의 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더욱) 떡 하나 더 주는 선거판 현실 속에서, 일단 우는 소리라도 크게 내야 한다는 지역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합리적인 판단보다 정략적인 판단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다 보니 정책의 실현 가능성보단 ‘위정자의 의지’가 강조된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이상 청와대의 의지만으로 정책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산의 정책 요구가 구체적이고 또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여대야소의 현 구조가 이어진다면 그나마 국회 논의 과정이 덜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여소야대의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요구는, 당선자의 약속은, 또 한 번 엄격한 심사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내년 3월까지 부산은 양당의 후보에게 많은 요구를 하고 또 많은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그중 일부는 타 지자체와 경쟁을 제치고 부산의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 공공기관 지역 이전에 따라 부산으로 유치해야 할 공공기관이 무엇일지도 그중 하나다. 그럴수록 왜 부산의 요구가 정당하고 합리적인지 부산 스스로가 논리를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떡을 달라고 마냥 울 것만이 아니라, 왜 우리가 그 떡을 받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브리핑해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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