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2월의 마음
이소정 소설가
재확산된 코로나로 인해 단계적 일상 회복이 중단됐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됐다. 그 간격을 매서운 겨울바람이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나와 일행들은 입구에 붙은 바뀐 방역수칙 안내문을 읽다가 카페를 돌아 나왔다. 일행 중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모두 곤란했는데 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을 약속하며 자리를 떠서 남은 사람들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백신 1차 접종 후 후유증으로 2차를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오랜만에 잠깐 얼굴만 보고 헤어진 그를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시기잖아요.” 그의 말이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식물과 동물은 겨울과 싸우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이 시기를 준비하고 순응하며 보낸다고 한다. “좀 지나고 괜찮아지면 그때 봐요.”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마 우리의 다음이 내년 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 습작 중에 새봄이라는 여자아이가 나오는 소설이 있다. 소설 속 아이는 이상하게 겨울에는 봄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른 계절보다 더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고. 봄 다음의 여름, 여름 다음의 가을을 생각하는 것보다 겨울 다음의 봄이 더 간절하다고. 왜일까? 나는 왜 그렇게 썼을까. 그건 생명을 품고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오래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입덧이 올라오면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럴 때는 맨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화분 속의 씨앗처럼 가만히 있다 보면 속이 좀 다스려지고 일어날 기운이 생겼다. 겨울이 그런 것처럼 생명을 품는 것은 순응하며 싸우는 일 같았다.
싸우지 않고 올해와 다음 해가 악수하는 것처럼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12월이면 나는 다이어리를 산다. 그것은 내게 기쁨을 준다. 통째로 내년을 들이는 일처럼 느껴진다. 한동안 몰스킨 다이어리를 쓰다가 이제는 브랜드가 아닌 내게 맞는 것을 신중하게 고른다. 나는 물건에 부리는 작은 사치를 좋아하는데 다이어리를 일 년을 두고 사용하는 것이니 그럴만하다고 합리화한다.
올해는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다이어리를 들였다. 표지에는 작은 호랑이 두 마리가 나란히 안고 있다. 마주 보지 않고 등을 보인 채 온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허리를 잡고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봄은 한 번도 겨울을 안은 적이 없지만 겨울은 늘 봄 쪽으로 팔을 뻗고 있다. 돌려받는다는 약속 없이 전하는 사랑이 나는 소용없는 짝사랑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생겨난 ‘공동체 냉장고(community fridge) 프로젝트’를 보며 그 생각은 더 단단해진다. 길가에 뜬금없이 냉장고가 한 대 놓여있고 어떤 사람이 와서 냉장고에서 달걀과 우유, 식빵을 꺼내 간다.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사람이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채워 놓는다. 그 일이 번갈아 가며 반복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냉장고다.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 할 수 있다면 놓고 가세요.”
누구의 것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이 프로젝트 냉장고는 코로나로 인해 실직 등 식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생겨나 전 세계 320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또는 다른 어려움 때문에 폐업을 해야 하는 곳에 가서 돈쭐(‘돈’과 ‘혼쭐내다’를 합친 말로 착한 소비로 보답한다는 의미) 내자는 글을 올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 모두 겨울이기에 가능한 따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봄이 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