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매스토피아]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인제대 AI융합대학 교수
2021년을 돌아볼 때 나를 가장 슬프면서도 힘들게 했던 단어는 바로 코로나19이다. ‘혹시나 올해는 끝나겠지’ 하고 올해 초에 가졌던 바람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고, 이젠 ‘코로나19와 공존할 수밖에 없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삶은 비일상이 일상이 되었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 사이 결속력을 점점 약하게 만들어 개인은 외로운 섬이 되어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더불어 같이 사는 이상적 사회인 유토피아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디스토피아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 오던 관습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으며, 서로를 돕고 협력하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내 것을 하나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인간미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세대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사람 사이 결속력 점점 약해지는 세태
기술 발전이 오히려 불평등 심화시켜
더불어 잘사는 국가 만드는 정치 돼야
이런 상황에 더해 지금 선거판을 보면 모래알처럼 원자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 2022년 3월의 대통령선거와 6월의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국가 분열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가 끝난 후 사회 분열과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자성이 매우 절실해 보인다.
지금도 나는 유토피아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으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가상의 섬에 지어진 이상적 나라이며, 시대에 따라 그 이상성의 성격은 다르게 해석됐는지 모르나 기본적인 전제는 구성원 모두에게 이상적인 사회라는 뜻이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정반대 개념이다. 유토피아가 낙원이라면 디스토피아는 그 특정 유토피아적 사상의 핵심 가치들을 모두 상실한 실낙원을 뜻한다. 유토피아와 다르게 디스토피아는 정치적,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이 인류의 미래에 미치는 또는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 사회가 디스토피아로 가지 못하도록 힘을 합쳐 막아 내야 한다는 의미다.
미래의 우리가 유토피아에서 살기 위해서는 현대 기술사회가 가진 이면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현대 기술의 발전에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데이터통신 및 네트워크, 일상 전반의 디지털화, 구성원과 사회 사이 교류와 연관된 모든 자료의 빅데이터화, 인공지능의 상용화 등이 있다. 사회 전반의 기술 고도화로 편리성이 보장됨과 동시에 기술 보급의 평등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그 불평등한 보급으로 인해 근로 기회와 사회경제적 위치, 교육 등에 대한 차별 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민주사회의 근본 가치인 정치 참여 기회조차 디지털화로 인한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가장한 개인 식별 데이터의 무분별 수집과 축적은 빅데이터의 판매로 인한 비윤리적 자본 축적, 개인정보권의 무차별 침해로 연결돼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 거대한 통신망은 프라이버시 상실과 공권력의 불법적 또는 비윤리적 감시 체계를 등장시켜 개인의 일상적 활동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 또 전산으로만 가능한 행정 활동은 정보통신기술 접근성이 낮은 노인 등에 대한 차별을 발생시킨다. 가장 노골적인 예가 ‘백신패스’다. 국민에게 전산화된 백신패스를 강요함에 따라 정보통신기술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차상위계층, 취약계층 및 노년층에게 대한 기본권 침해가 행해지고 있다. 모든 금융 활동이 디지털화됨에 따른 불평등 심화, 그리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취약성이 급증하고 있다. 아예 현금을 안 받는 상점들도 늘어나고 있다. 행정 활동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요컨대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줄이는 방안들을 국가와 정부가 적극 마련해야만 국민들이 진정한 유토피아에 살게 된다는 말이다. 디스토피아적 요소들이 이미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을 제거하고 사회가 유토피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무분별한 퍼주기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데 급급한 모습인데, 그런 공약과 정책들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먼저 면밀히 분석하고 대비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표를 얻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국민들이 살아갈 터전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대선 후보들과 정치인들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잘살 권리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의미가 없다. 유토피아를 이루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만들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22년에는 우리 모두가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