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주한미군… 우리 땅의 상처, 예술로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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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우리 땅의 상처를 기록했다. 하나는 내부에서 만들어진 상처이며, 또 하나는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이다. 전시공간 영영과 공간 힘, 부산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독립 예술공간 두 곳에서 이 상처를 마주할 수 있다.


박자현 개인전 ‘오늘 ?㈏? ?㈏숯?
성매매 집결지 낡은 문 화폭에
노순택·정여름·주용성 등 6인
‘주피터 프로젝트’ 주제로 전시


■ 성매매 집결지의 문

오래된 도심의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문. 단순한 재개발 지역의 풍경이 아니었다. 박자현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림 속 문 옆의 ‘예약 중’이라 쓰인 간판과 다른 문 앞에 걸린 여성 코트가 아프게 다가왔다.

박 작가의 개인전 ‘오늘 ?㈏? ?㈏숯?은 26일까지 전시공간 영영(수영구 망미번영로52번길 5)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종합심리검사지 표지에 누군가가 직접 쓴 글씨에서 가져왔다. “아는 분의 검사지인데 글자가 ‘?㈏숯?으로 틀리게 쓰여 있잖아요. 그림이 ‘맑음’과 반대의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어울리는 제목 같았어요.”

재개발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오던 작가는 속칭 ‘방석집’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미남로터리 근처에 있던 성매매업소들이 아파트 재개발로 비워지는 모습을 봤어요.” 그는 여성들이 착취를 당하며 일하던 공간이 인권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당감동 백양대로 아래 상가들을 그렸어요. 피란을 온 여성들이 갇혀서 일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당감동 성매매 집결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박 작가는 “지역 주민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성매매 업소들과 그 뒤쪽에 여성들이 살던 쪽방의 흔적이 남아다”고 전했다.

전시장 바닥에 줄지어 세워 둔 낡고 닫힌 문들의 그림. 박 작가는 감전동 뽀뿌라마치에서 본 문의 흔적을 이야기했다. “문이 있어도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했고, 창문이 있어도 자유롭게 바깥과 소통할 수 없었잖아요.”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림 속 문 뒤에서 묘하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박 작가는 “미남로터리 근처 성매매 업소 앞을 지나가다 문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박 작가는 부산에서 상인으로 자녀를 키운 한 여성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를 생계부양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전시장에 책상을 두고 관람객들이 여성 노동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게 했다.

‘문 하나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 같다.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다. 멀찍이서 보니 그래도 전체가 보인다. 묵묵히 기다린다. 굳게 닫힌 채로.’ 관람객이 남긴 글에 박 작가의 글이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전시 관람 사전 문의. 010-5798-3009.



■ 주한미군 그리고…

‘주피터 프로젝트’는 ‘합동주한미군포털 및 통합위협인식’이라는 프로그램명의 머리글자를 딴 주피터(JUPITR)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전시이다.

2015년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에 페덱스 택배가 도착한다. 평범해 보이는 택배 상자 속에는 살아있는 탄저균이 들어있었다. 2016년 미 국방부가 생화학전 대처 능력을 치르기 위해 추진 중인 연구과제 주피터 프로젝트가 부산에서 도입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2019년 는 미 국방부 예산평가서를 입수, 부산항 8부두에서 생화학 실험이 포함된 ‘주피터 프로젝트’를 지속하려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이번 전시는 주피터 프로젝트를 지역 의제가 아닌, 지역과 지역을 넘어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노순택, 박기덕, 이재각, 정강산, 정여름, 주용성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는 공간 힘(수영구 수미로50번가길 3)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지하 1층 전시장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것은 주피터 프로젝트 아카이브이다. 제국주의 세계사와 대한민국 구조사, 주피터 프로젝트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노순택 작가는 폭격의 거대한 화염을 나무판 위에 108장의 작은 인화지를 이어 붙인 작품 ‘좋은 살인’을 선보인다. 2층 전시장에서는 노 작가가 미 공군 폭격 훈련장인 매향리 농섬의 모습을 포착한 ‘고장난 섬’ 연작을 보여준다.

주용성 작가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카메라를 직시한 그들의 모습에서 역사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재각은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에서 군인으로 있었던 K의 기록과 이야기를 통해 미군기지에 땅을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기덕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상징으로서 ‘오키나와 한정 라벨’이라고 쓰인 스팸 통조림의 외관을 보여준다.

정여름 작가는 미군기지라는 장소와 기억의 연관성을 영상으로 풀어낸다. 36분짜리 작품인 ‘긴 복도’는 주한미군 기지 캠프 롱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이야기다. 탐정은 방치된 정보의 조합을 통해 ‘캠프 롱 ATM’이라는 지리 데이터값을 발견하고, 역사에서 떨어져 나온 ‘ATM의 잔고’를 추적한다.

‘주피터 프로젝트’를 기획한 서평주 공간 힘 대표는 “3~4년 전부터 작가들과 의논해서 준비한 전시”라고 밝혔다. 그는 “주피터 프로젝트는 성주 사드 기지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라 휘발되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며 “2022년 1월 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시민들이 언제든 들어와서 주피터 프로젝트 관련 정보와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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