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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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1367~1422)은 조선 건국을 위해 스승으로 여기던 정몽주를 참살하고, 건국 후에는 아버지와 형을 왕좌에서 내쫓았다. 그 과정에서 동지 정도전은 물론 형제들마저 저세상으로 보냈다. 임금이 된 후에는 장인을 비롯해 처가 식구들을 도륙했다. 자기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인정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방원을 무던히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사관들이었다. 하루는 이방원이 공신들과 연회와 사냥을 즐기고 밤늦게 환궁했다. 그런데 사관 민인생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기록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이방원은 “저 인간 좀 내보내라”고 지시했지만 민인생은 “임무를 다해야 한다”며 버텼다. 어느 날엔 편전에까지 따라오는 민인생에게 “잠시도 못 쉬게 하냐”며 역정을 내며 쫓아내려 하자 민인생은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며 도리어 왕을 겁박했다.

무자비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이방원이 사관의 그런 겁박까지 용인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독특한 언론관 때문이었다. 무인인 아버지와는 달리 과거에도 급제한 문인 이방원은 왕이 된 후 의정부-육조 체제로 국정운영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동시에 사간원이라는 독립 기구를 발족시켰다. 사간원은 대간(臺諫)으로서 왕을 감시하고 비판했다는 의미에서 사관과 함께 당시 언론의 핵심이었다.

조선 시대 대간은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차지했다. 영조 때 실학자 이중환은 “우리나라의 벼슬제도는 중국과는 다르며 비록 삼공육경을 두었지만 중점은 대간에 두었다”고 평할 정도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 이방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간원을 출범시키면서 “말을 해야 할 터인데 하지 않는 것은 불가하다”거나 “임금은 신하가 간하면 들어야 한다”면서 언론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정권이 대간에게 다 돌아가는 것은 부당하나 대간에 권력이 없는 것도 부당하다. 대간에 권력이 없다면 탐오하고 포악한 자를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며 언론에 힘을 실어 줬다.

이후 조선이 500년 이상 유지될 정도로 반석에 오른 건 이방원이 마련한 그런 기틀 덕분이라 해도 무방하다.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를 이방원에게서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요즘 대선 정국에서 자신의 잘못과 흠결을 따져 묻는 언론을 기피하고 매도하는 대선후보를 보게 된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최근 KBS가 오랜만에 선보인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을 보고서 문득 든 생각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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