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동화] 용기 내 몽고
지숙희
“저것 봐. 내 말 맞지?”
까마귀 어두미가 도로를 가리켰다. 깜깜한 도로 한가운데 뭔가 비틀거리더니 푹 쓰러졌다.
“뭐지?”
독수리 몽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양이. 딱 보면 알지. 조금만 기다리면 맛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쩝쩝.”
어두미가 입맛을 다셨다. 달님도 구름 속에 숨어버린 깊은 밤이 흘렀다. 어둠 속 저 멀리 빛이 반짝거렸다. 불빛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 빨리!”
어두미가 고양이를 한 번 쳐다보곤 불빛을 향해 조용히 외쳤다.
-빠아앙.
트럭이 성난 코뿔소처럼 달려왔다. 그때였다.
“안돼!”
어두미 옆에 있던 몽고가 한쪽 날개를 펄럭이며 기우뚱 날았다. 도로 위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낚아챘다. 순간 트럭이 몽고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몽고와 고양이는 도로 옆 수풀에 처박혔다.
“몽고! 미쳤어?”
트럭이 사라지자 건너편에 있던 어두미가 날아왔다.
“난 괜찮아. 쟤는?”
몽고가 마른 풀숲에 내팽개쳐진 고양이를 가리켰다. 어두미가 부리로 고양이 다리를 콕콕 찔렀다. 순간 고양이 다리가 바르르 떨렸다.
“에잇, 살았잖아.”
어두미는 몽고를 흘깃 보고는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몽고는 창고 한구석에 쓰러져있는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엄마야!”
고양이가 눈을 뜨며 소리쳤다.
“몽고, 너 때문에 놀랐나 봐. 하긴 너 덩치 보고 안 놀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어두미가 놀리듯 말했다.
“여 여기가 드 드디어 고양이 별인가요?”
고양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쟤 뭐래? 자기가 죽은 줄 아나 봐. 우헤헤헤. 웃긴다. 웃겨.”
어두미가 콩콩 뛰어다니다 날아올랐다.
“몽고가 널 살렸어. 널 구했다고. 이 바보야. 바보야!”
어두미가 창고 안을 날아다니며 소리쳤다.
“누가 살려달래? 난 살고 싶지 않아.”
고양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눈물을 뚝 흘렸다.
“죽고 싶다고? 그럼 오늘 밤 다시 가서 누워. 커다란 바퀴가 널 밟고 지나가게. 너 구하다 몽고가 죽을 뻔했는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에잇 재수 없는 고양이.”
어두미는 똥을 찍 싸고는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바보짓 하지 마.”
조용히 있던 몽고가 말했다. 매서운 눈매, 날카로운 부리, 엄청나게 큰 날개, 대머리지만 독수리의 당당한 모습에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바람이 창고 안으로 들이쳤다.
“빨리 걸어. 이러다가 오늘도 굶겠다.”
“아직 시간 있어. 하늘을 봐.”
몽고와 걷고 있던 어두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까만 독수리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른 논바닥에 고깃덩이를 여기저기 두고 나갔다. 하늘을 날고 있던 독수리들이 하나둘 내려앉았다. 비 온 다음 날 밥 시간이라 물고, 뜯고, 빼앗으며 먹이 싸움이 치열했다.
멀리서 고양이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 독수리는 사냥을 못 하나? 왜 사람들이 밥을 주지?”
고양이는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와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곤 몸을 둥글게 말았다.
‘며칠을 굶은 걸까? 엄마….’
몽고와 어두미가 창고로 돌아왔다. 어두미가 고양이 앞에 먹이를 툭 던져 주었다.
“힘들게 건진 거야. 물론 몽고가.”
고양이는 어두미가 던져 준 닭고기살에 코를 갖다 대었다.
“처음 보는데 이름이 뭐야?”
어두미가 물었다.
“마로.”
고양이 마로는 닭고기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내 이름은 어두미. 쟤는 몽고.”
마로는 어두미와 몽고를 번갈아 쳐다봤다.
“몽고가 나도 구해 준 셈이지. 몽고가 밥 먹을 때 내 몫도 챙겨 주거든. 물론 몽고도 배부르게 먹는 건 아니지만.”
어두미가 몽고 옆으로 갔다. 몽고가 날개를 퍼덕이자 어두미가 후다닥 날아올랐다.
“깜짝이야! 적응이 안 돼. 그런데 넌 왜 고양이 별로 가려고 한 거야?”
어두미가 물어도 마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억지로 듣고 싶진 않거든. 몽고, 날개는 좀 어때?”
어두미 말에 몽고가 오른쪽 날개를 펼치려다 신음을 냈다.
“칵.”
“혹시 나 때문에 다친 거야?”
마로가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물었다.
“아냐. 밥 때문에…. 내 차례가 아닌데 먼저 먹으려다….”
몽고는 날개를 펴려고 안간힘을 썼다.
“네가 계속 양보하니까 다들 깔보는 거야. 머나먼 몽골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힘센 놈들에게 밀려서 온 거잖아.”
어두미가 콧바람을 씩씩 불어대며 애꿎은 땅을 쪼아댔다.
“몽골은 여기보다 더 심해. 먹이 양보다 우리 숫자가 훨씬 많았지. 여기 오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힘이 들어도 긴 시간 동안 날아올 수 있었는데.”
“이 추운 겨울을 잘 이겨 내야 따뜻한 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저렇게 비쩍 말라선. 쯧쯧.”
몽고는 아무 말 없이 밖을 쳐다봤다.
“엄마랑 나는 도망쳐 나왔어. 우리가 그 집 가족이 됐을 때는 따뜻한 집이었는데 사업이 망하니까 사람도 망가지더군. 술에 취하면 괴물로 변했어. 엄마랑 나는 그때마다 숨기 바빴어. 결국, 엄마는 한쪽 눈을 잃고 말았지.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밤이었어. 괴물이 술에 취해 들어오더니 거실 한가운데 널브러졌어. 그리곤 코를 골았어.”
마로의 초점 없는 눈빛이 떨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두미가 어느새 마로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는 바람 때문에 현관문이 닫히질 않았다는 걸 알았지. 머리로 힘껏 문을 밀었지만, 쉽게 열리지 않았어. 나도 엄마랑 함께 들이밀었어. 문이 조금씩 뒤로 밀렸지.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달렸어.”
마로 목소리가 떨렸다.
“와 정말 잘 됐어. 불행 끝. 행복 시작.”
어두미가 창고 안을 빙빙 날아다녔다.
“나도 그런 줄 알았어. 하지만 집 밖 세상은 더 무섭고 힘들었어. 배가 고파 남의 밥그릇에 입을 댔다가 두들겨 맞고, 남의 땅에 들어왔다고 쫓겨나고…. 결국 엄마가 내 밥을 구해 오다가 그만 차에…. 엄마.”
마로 울음소리가 창고 안을 울렸다.
‘내 밥은 내가 구해야지. 더는 몽고 밥을 축내선 안 돼.’
마로는 며칠 동안 창고에서 몽고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었다. 그 덕에 기운을 차린 마로는 조용히 창고를 빠져나왔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렸다.
“생쥐라도 잡으면 좋을 텐데.”
마로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녔다. 트럭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렸다. 남자 둘이 차에서 내렸다. 마로는 트럭 밑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낮에 봤지? 정말 멋진 놈들이야. 독수리를 박제해서 팔면 큰돈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이 농약 묻은 볍씨를 뿌리면 되는 거지?”
“그렇지. 농약 묻은 볍씨를 까마귀나 까치, 조무래기 새들이 먹고 죽으면 독수리들이 죽은 그 새들을 먹을 거야. 그럼 독수리가 죽는 건 시간 문제지.”
“바보 같은 놈들. 덩치는 곰 만한 것들이 사냥도 못 하고 죽은 고기나 먹고. 쯧쯧.”
트럭 밑에 있던 마로는 귀를 쫑긋 세웠다.
‘몽고. 어두미. 아 어쩌지.’
“낮에 보니 저쪽 논에 까마귀 떼들이 모여 있던데. 빨리 뿌리고 와. 난 망볼 테니.”
“알았어. 볍씨 뿌리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망 잘 봐.”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논 쪽으로 걸었다. 남은 사람은 트럭에 올라탔다.
‘어두미가 죽고, 몽고는 박제? 안돼!’
마로는 논 쪽으로 간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잽쌌다.
별들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바스락.
조심스레 따라가던 마로가 그만 마른 풀을 밟고 말았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마로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이씨,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에잇 재수 없는 고양이.”
남자는 돌멩이를 마로에게 던졌다.
“이야옹!”
“명중이다!”
남자는 돌멩이를 하나 더 던졌지만, 마로는 이미 피하고 없었다.
“여기랬지.”
남자는 비닐 속 볍씨를 여기저기 뿌려댔다. 볍씨를 탈탈 뿌리곤 허겁지겁 뛰다가 논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남자는 절뚝거리며 트럭으로 걸어갔다.
‘흥. 쌤통이다.’
마로는 꼬리를 탁탁 쳤다. 잠시 후 트럭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몽고, 어두미. 큰일 났어!”
마로는 정신없이 달려와 몽고와 어두미를 깨웠다.
“무슨 일이야? 엇, 피가 나, 피가 나.”
어두미가 마로 주변을 빙빙 돌며 수선을 피웠다. 마로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마로. 왜 이래?”
몽고도 놀라 소리쳤다. 새벽 어스름에 몽고와 어두미는 바쁘게 움직였다. 어두미는 까마귀 대장에게 어젯밤 마로가 보고 들은 얘기를 날랐고, 몽고는 독수리 대장에게 주의하라고 전했다. 어두미는 까마귀 대장에게 마로가 가르쳐준 농약 볍씨가 뿌려진 곳을 직접 안내했다. 까마귀들은 주변의 작은 새들에게도 빨리 알렸다.
“잘했어. 이깟 상처쯤이야. 친구를 위해서라면…. 엄마, 나도 이제 친구가 생겼어.“
마로는 머리가 따끔거렸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몽고와 어두미가 창고 안으로 날아왔다.
“마로. 몽고랑 내 밥은 이제 걱정 없게 됐어. 고마워. 그리고 저번에 재수 없는 고양이라고 해서 미안해. 친구야.”
어두미는 쑥스러운지 다시 밖으로 날아갔다.
“우리도 고마워하고 있어 마로. 대장이 널 보고 싶어 해. 오늘 밥 시간에 같이 가자.”
“엄마랑 나는 며칠 만에 겨우 밥을 구했어. 내가 먼저 도로를 건넜고 엄마가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차에 치이고 말았어. 차에서 내린 사람이 엄마를 도로 옆 바다에….”
마로는 가만히 한숨을 내 쉬곤 다시 말을 이었다.
“몽고. 그날 밤 구해 줘서 고마워. 엄마 죽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어. 힘센 고양이에게 따돌림 당하고, 사람들에게 더러운 길고양이라고 돌 맞아도. 그날 난 너무 지쳐 엄마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마로는 꼬리를 세우고 몽고에게 다가갔다. 몽고 발을 핥았다. 놀란 몽고가 발을 뒤로 뺐다.
“혓바닥이 까슬까슬하구나. 간지러워.”
몽고가 웃었다.
“뭐가 간지러워. 뭐가, 뭐가?”
어느새 어두미가 날아와 몽고와 마로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어느새 바스락거리던 풀들이 봄빛으로 반짝거렸다.
“몽고, 내일 고향으로 떠나는데 아직도 날개가 완전히 펴지지 않으면 어떡해? 날개 운동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어두미가 잔소리를 해댔다.
“아옹. 시끄러워. 신경 쓸 거 없어. 높이 올라가자.”
몽고 등에 탄 마로가 몽고를 토닥거렸다. 지난밤, 마로가 몽고에게 부탁을 했다. 고향으로 떠나기 전 하늘을 한번 날게 해 달라고. 바다를 한번 보고 싶다고.
“용기 내 몽고! 넌 할 수 있어!”
마로 말에 몽고는 오른쪽 날개에 힘을 더 바짝 주었다. 그러자 두 날개가 쫙 펼쳐졌다. 몽고는 날개를 저어 서서히 올라갔다.
“우와. 멋지다.”
어두미가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몽고를 올려다봤다.
“어두미. 우리, 바다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몽고가 어두미를 내려다보며 큰소리로 물었다.
“바다는 왜?”
어두미도 몽고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마로가 엄마 보고 싶은가 봐. 너도 내 등에 타.”
몽고는 어두미가 보이는 아래로 내려갔다. 어두미는 몽고 등에 내려앉았다.
“몽고, 높이 날아봐. 우헤헤헤. 마로 너도 신나지?”
“신나지.”
“꽉 잡아. 준비됐지?”
몽고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힘껏 날개를 저었다.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