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핵폐기장화, 정부 끝내 강행하겠다는 건가
정부가 원전 소재지를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 폐기장으로 고착화할 우려가 높은 계획안을 밀어붙이면서 지역과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27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10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어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안건을 의결했다. ‘처리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한다’는 이번 기본계획이 진행되면 부산과 울산, 울진, 영광 등 원전 내부 임시저장시설은 핵폐기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정부가 1978년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를 설립한 이후 반세기 가까이 영구처리장 설치 논의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임시 저장시설은 고착화 빌미 제공
정치권·지자체가 나서서 막아야
핵 발전에 사용된 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남은 대량의 방사성 물질인 사용후핵연료는 치명적 유독성이 사라지는 데 10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정부안이 최종 확정되면서 원전 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은 “임시 저장시설이 결국에는 핵폐기물 영구 처분장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원전으로 발생하는 현안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부산을 비롯해 울산, 경북, 전남도 등 원전 소재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 행정협의회는 “정부의 기본계획안에 반대하고,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 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지역과 소통 없는 정책 추진에 반대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탈핵 단체와 원전 지역 주민들도 “지역을 천시하는 극심한 수도권 중심 행태”라면서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운영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한수원이 자의적으로 증설할 수 있고, 사실상 영구처분장 빌미가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탈원전’을 주창한 문재인 정권이 2017년 고리1호기가 영구 정지된 이후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인 핵폐기물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 방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도 수도권과 떨어진 원전 소재 지역 주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처사다. 이로 인해 원전 소재지 주민은 방사능 피폭 위험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안전과 생명, 경제에 끼치는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류는 고준위방폐물 유출로 환경과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에서 ‘원전과 핵폐기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특히 원전이 밀집한 부산-울산-경주 지역은 대표적인 지진 위험 지역임을 감안하면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영구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부가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제대로 된 공론화와 투명한 정보공개, 지자체·주민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빠진 중앙정부가 원전 소재 지역에 또다시 희생만 강요한다면 대규모 충돌 사태도 배제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 시민사회 모두가 나서서 원전 소재 지역을 영구 핵폐기장화 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