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기술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간 까닭은?
글래시스 로드/한지선
안경은 13세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탄생했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상품인 안경은 어떤 방식으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파되었을까.
는 동서양 문명사를 다룰 때 흔히 알려진 실크로드 중심의 교류가 아니라 인도양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공간의 문명 교류를 풀어낸다. 중세부터 전근대까지 인도양 무역망에서 펼쳐진 안경의 전파와 교류를 통해 아시아를 통합하는 교역 네트워크의 흔적을 살펴본다. 단순한 상품 교환을 넘어 사람·물자·정보·문화의 이동과 교류 등 다양한 문명의 요소들을 세계화의 맥락에서 서술한다. 실크로드 너머 ‘안경의 길(글래시스 로드)’을 추적하고 재구성한 문명 교류사라고 할 수 있다.
안경 소재로 동서양 교역 네트워크 다뤄
유럽서 발명… 기술은 무역 교류서 찾아
중국, 렌즈 기능·제조법 발전 못 시켜
19세기 이후 주도권 유럽으로 넘어가
조선의 실학자 유득공은 연행사절을 따라 간 중국 북경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포착한다. 북경의 여러 고관이 ‘애체’라는 안경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낯설고 놀라운 신문물이었던 ‘안경’은 시력을 보조하고 보호하는 도구이자 신분을 드러내는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14세기부터 안경은 국가적 차원에서 조공품으로 주고받는 등 귀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7차에 걸쳐 원정을 떠났던 명나라의 정화, 동아시아 쪽으로 활동을 펼친 스페인의 예수회 선교사들의 교역 물품 중에는 금, 은, 비단 등의 귀중품과 나란히 안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의 삶부터 국가적 차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안경은 언제 발명되었을까. 어떻게 널리 전파되어 조선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쓴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한지선 선임연구원은 10세기부터 시작된 인도양 중심의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에서 힌트를 찾았다. 안경은 유럽에서 발명되었지만 안경 제조 기술의 단초는 이슬람, 인도, 아시아의 무역과 문명 교류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 해양사 및 문명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약 6년 동안 고문서, 사료, 논문 등 200여 권 이상의 문헌 자료를 집요하게 분석해 7~19세기까지 ‘글래시스 로드’를 재구성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슬람이 주도하는 교역망, 아랍 유리의 기술적 위상, 교역 네트워크를 따라 인도, 페르시아 등을 오고 간 유리 제품 등을 분석하면서 유라시아 양끝에 위치한 유럽과 중국 모두 이슬람 교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10세기 이후 계절풍 항해가 가져온 장거리 교역 네트워크 방식은 원나라가 구축한 교통망에 의해 한층 확장되면서 이주와 교류, 문화적 공유가 활발해졌다는 것.
특히 명대에 중국으로 유입된 안경의 원산지를 살피면서 유라시아와 인도양 일대에 존재하는 장거리 교역 방식의 복원, 호시의 확대로 안경이 확산될 수 있었음을 밝힌다. 17세기부터는 중국에서도 자체 제작된 수정렌즈를 사용했다. 유럽 안경도 대규모로 보급되어 중국에서 자체 제작품과 수입품이라는 두 가지 안경 문화가 상존했다. 중국에서 뻗어 나온 안경 문화는 조선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는 16세기에 처음 안경이 유입된 후, 17~18세기 북경에 다녀온 조공 사절이 유리창 등의 시장에서 안경을 가져와 유통하면서 이용자 수가 증가했다. 중국에서 제조된 안경을 주로 쓰던 조선인은 점차 디자인이 우아하고 기능도 우수한 유럽식 안경을 선호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의 장인들은 숙련된 기술로 유럽식 안경에 버금가는 안경을 제작해 동아시아 안경의 수요를 충족시키며 유럽의 안경을 대체했다. 하지만 렌즈 제조법이나 기능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고,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 저자는 결국 이런 차이점 때문에 19세기 이후 안경 기술 발전을 둘러싼 주도권이 발상지인 유럽 쪽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안경을 소재로 동서양의 교역 네트워크에 얽힌 역사가 흥미진진하다. 한지선 지음/위즈덤하우스424쪽/2만 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