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넘치는 시민·아름다운 환경, 부산이 너무 좋아요”
지역 정착 공공기관 직원들
“바다와 산이 가까이 있고. 생활 여건도 좋고. 대도시 중 부산처럼 살기 좋은 동네가 있나 싶네요.”
서울에서만 35년간 살아온 윤순욱(40) 팀장은 이제 ‘부산 갈매기’가 다 됐다. 윤 팀장이 가족과 함께 부산에 정착한 지 5년째.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예탁결제원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부산에서 단 한 번도 살아본 적도 어떤 연고도 없던 윤 팀장은 이제 사투리도 정겹고 명소를 다 알 정도로 부산 사람이 다 됐다.
막상 부산에 내려오기로 결심했을 때 윤 팀장보다 가족들이 더 걱정을 했다. ‘경상도 사투리’ ‘거칠다’ ‘투박하다’ ‘어촌’ ‘운전이 난폭하다’ 등 그동안 부산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이미지나 편견들 탓에 살짝 두려움마저 느꼈다. 아빠와 남편만 바라보는 가족의 근심에 윤 팀장 어깨는 무거웠다.
“기러기 아빠? 가족 모두 부산 갈매기”
부산 혁신도시 가족동반 이주율 70%
자연과 현대적 시설 조화에 매력 느껴
사교육 등 걸림돌 국제학교 유치 필요
그러나 이주 딱 한 달 만에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명소가 가까이에 있다 보니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늘 갑갑해하던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늘 쫓기듯 아등바등 살아가던 서울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주거,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세심하게 챙기는 인정미 넘치는 사람들 등 윤 팀장은 부산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시작되면서 조성된 부산 혁신도시가 이제 ‘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영 낯설게만 느껴지던 ‘부산 본사’라는 공공기관의 타이틀도 많이 익숙해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9월 말 기준으로 부산 혁신도시에 가족과 함께 모두 내려온 기혼자는 1807명에 이른다. 가족은 두고 단신으로 이주한 사람은 760명이다. 가족동반 이주율이 70%로, 전국 혁신도시 평균(66.5%)보다 높다. 여기에 독신이나 미혼이어서 혼자 올 수밖에 없는 사람도 1087명에 달해 부산에 터를 잡고 정착한 사람이 2894명에 이른다.
가족과 함께 내려온 기혼자 상당수가 ‘꽤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이들 ‘부산 갈매기’ 직원이 꼽은 부산의 장점은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였다. 우선 날씨가 쾌적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미세먼지도 수도권보다 훨씬 덜하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2017년 부산에 정착한 기술보증기금 홍진영 부부장은 “부산 정착 후 서울 본가에 인사 드릴 겸 올라갔는데 아이가 도착하자마자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계속했다. 아마도 미세먼지에 아이 몸이 거부감을 보인 것 같다. 아이가 부산에 오니 괜찮아졌다. 부산 날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고 말했다.
태어난 후 수도권에서만 살았던 정래호 한국자산관리공사 과장은 “부산은 산천이 어우러지고 또 현대적 시설까지 갖춰진 도시여서 금세 반해 버렸다”며 “무엇보다 타지에서 왔다고 하니 이웃처럼 잘 챙겨 주는 부산 사람의 세심함과 배려에 감동 받은 적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 혁신도시 이전 대상인원은 3668명이다. 부산 혁신도시 계획인원은 7000명인데 가족을 포함한 혁신도시 인구는 7400명에 달한다. 부산은 혁신도시 계획인구 달성률은 105.7%에 달해 전북(100.0%)과 함께 목표를 이룬 2곳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아직 부산 정착을 주저하는 직원들도 있다. 가족이 있는 사람 중 단신 이주자가 760명인데, 자녀 교육 여건이 아무래도 컸다. 자녀가 고학령이 될수록 교육 환경에 한계를 느끼며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는 직원이 많다고 한다. 이른바 대치동 목동 등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가 부산엔 없다.
부산 이전 금융 공공기관 A 씨는 “단도직입적으로 사교육 시장의 유명 강사는 서울에 다 몰려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돈 좀 더 주더라도 유명 강사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다. 부산에는 질 높은 강사나 학원이 부족하다 보니,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며 “아이들이 성장하면 교육 환경 때문에라도 서울로 돌아갈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부산에 정착한 가족 대다수는 남편과 아내 중 한 명은 ‘경력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부산에 재취업할 만한 좋은 일자리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명문학교와 협약을 맺고 국제학교를 유치한 제주가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제주에는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가 다수 생기면서, 전국의 학부모들이 짐과 돈을 싸들고 제주를 찾고 있다. 제주 혁신도시 달성률은 96.0%에 이른다.
삶의 여건이 제주보다 훨씬 나은 부산에 유명한 국제학교 1곳 정도만 있으면 교육 환경을 질적으로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국제학교가 부산지역 교육 앵커 시설로 자리매김하면 주변에 수준 높은 사교육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전국에서 유명한 선생이나 강사들이 앞다퉈 부산에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혁신도시가 각 지역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역인재 의무채용과 같은 청년취업 확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전 직원과 가족들을 위한 수준높은 교육·일자리 제공이 꼭 필요하다”며 “부산의 경우 도심에 혁신도시가 조성된 만큼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년째 부산에 사는 직원 B 씨는 “직원들 대다수가 부산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공감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특혜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만큼 정책적으로 보다 세심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형·김덕준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