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민족의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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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옛날에는 그저 무인의 용맹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차용되거나 민간에서 산을 수호하는 신령쯤으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그랬던 호랑이가 한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88서울올림픽의 역할이 컸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호랑이를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일부 지식인에 한정된 경우였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에서 마스코트로 선정된 이후 호랑이는 최소한 남한의 자연환경에서 절멸된 상태임에도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이 됐다. 심지어는 당시만 해도 실체가 불분명했던 ‘한국 호랑이’를 실재화하고 국내로 반입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전두환 정부는 올림픽 마스코트 제작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서울올림픽조직위를 통해 1982년 마스코트 현상공모를 진행했는데, 총 4344건 응모에 60여 종의 대상물이 제안됐다.

그런데 대상물 중 선두를 차지한 건 진돗개(601건)였다. 슬기롭고 용맹한 천연기념물이라는 점이 추천 사유였다. 진돗개의 뒤를 이어 백의민족과 평화를 상징하는 토끼(582건), 길조로 여겨지는 까치(547건) 순으로 응모됐다. 호랑이는 4위(356건)에 그쳤다. 만약 현상공모만을 통해 마스코트를 선정했다면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돌이’가 아니라 ‘진돌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돗개는 1972년 뮌헨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닥스훈트 종의 개 ‘발디’였음이 확인돼 일찌감치 제외됐고, 까치는 우리나라에선 길조지만 서양에서는 해로운 새로 알려져서 탈락했다. 토끼는 ‘플레이보이의 심벌’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일어 결국 ‘4위’ 호랑이가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직위가 그래도 백의민족과 평화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토끼를 최종 후보로 보고하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토끼가 뭐냐”고 호통쳐 그 서슬에 호랑이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후 호랑이는 잔인하다는 이미지를 벗고 친숙하면서도 한민족의 웅혼한 기운을 상징하는 동물로 각인됐다.

근래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이 화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호랑이 관련 내용을 대부분 수록했다고 한다.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홈페이지(https://folkency.nfm.go.kr) 내 ‘민속상징사전’ 항목을 찾아 들어가면 대강의 내용을 볼 수 있다. ‘호랑이 해’를 맞아 찾아서 읽어봄 직하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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