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료 평균 16% 인상… ‘선한’ 가입자들 뿔났다
40대 직장인 조 모 씨는 최근 보험사로부터 ‘실손보험료가 15~20% 오를 수 있으니 미리 공지합니다’라는 통보를 받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조 씨는 5년 전 가입한 이후 연체 한번 없이 매달 2만 원대의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보험금을 청구한 적 없는 ‘선한’ 가입자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연 보험료를 수만 원 더 내야한다고 생각하니, 과잉진료 등으로 막대한 보험금을 타먹은 일부 가입자들의 뱃속만 채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올해부터 실손보험료가 대폭 인상되면서, 실손보험금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선한’ 가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보험업계가 과잉진료 등 일부 비양심적인 고객들의 의료비를 ‘선한’ 가입자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1·2세대 보험료 새해 대폭 인상
132% 넘는 손해율 낮추기 명분
가입자 62.4% 한푼도 청구 안 해
2.2%는 연 1000만 원 이상 수령
백내장 등 과잉 진료가 적자 주범
“비급여 항목 지급 기준 정비부터”
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의 62.4%인 2181만 명이 보험금을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실손보험료가 대폭 인상되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선한’ 고객이더라도 올해부터 수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1세대’ 구(舊) 실손보험(2009년 9월까지 판매)과 ‘2세대’ 표준화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 보험료가 올해부터 평균 16% 인상된다고 3일 밝혔다.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2700만 명이다. 또 2017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판매된 ‘3세대’ 신(新) 실손보험 보험료는 평균 8.9% 오른다.
이와 같은 보험료 인상 소식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 대다수는 ‘보험사가 과잉진료비를 전가한다’, ‘올리지만 말고 한 번도 사용 안 한 사람은 환급해달라’, ‘이제부터 나도 과잉진료 받겠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의 극소수인 2.2%(76만 명)만이 각 1000만 원 넘는 보험금을 받았다. 또 2019년에 지급된 보험금 11조 6000억 원 가운데 상위 10%에만 보험금이 6조 7000억 원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보험업계는 매년 치솟는 실손보험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선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32.3%이다. 보험료 수입이 100원이면 130원이 넘는 보험금이 지급돼 30원 이상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이 같은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는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한 과잉 의료 행위가 꼽힌다. 실제,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779억 원에 불과했던 백내장 수술 실손보험금은 2021년엔 15배가량 급증한 1조 1528억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지난해 252차례 병원에 가서 7419만 원의 보험금을 받은 30세 가입자의 사례도 적발됐다.
무조건적인 보험료 인상에 앞서 이처럼 줄줄 새는 실손보험금을 막기 위해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 항목의 보험금 지급 기준이 우선 정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은 공돈이라 먼저 타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다”며 “비급여 부분에 대한 정비를 통해 실손보험금이 딴 데로 새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