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보이지 않지만 따뜻한 손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우리에게는 으로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간과 사회의 규범으로까지 확장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개미 전문가지만 인간 본성에 관한 책도 썼고 생물학을 바탕으로 모든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우리나라에도 그 주장을 담은 책이 번역·소개되어 파편화된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는 풍조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유전자가 생명의 유일한 결정 요인 아냐
자연 상태의 생물들도 공감하고 협력해
서로 보듬는 과정 통해 삶 바꿀 수 있어
이보다 먼저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는 자기 복제를 극대화하려는 유전자의 지향성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행동과 형질의 원인이라는 충격적 주장을 담은 책이다. 진화의 원동력인 자연선택의 단위를 집단이나 개체가 아닌 유전자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인데, 내가 아닌 유전자가 생명의 주체인 것으로 생각하면 많은 형질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만이 유전자의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던 인간의 자존심을 크게 해치는 주장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후 국내외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생물학자들이 논쟁을 이끌어 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생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 진영 간의 대립 양상을 보였다. 서양에서는 과학적 논쟁을 통해 논점이 일부 정리되어 가는 흐름이 보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주장만 반복하다 끝난 모양새다. 과학자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일반적 이해가 부족하고 인문사회과학자는 사회생물학의 과학적 내용을 잘 모른 채 논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는 생물학 원리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려 했지만 정작 인간과 사회의 기본 바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인문사회과학자는 최신 과학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채 추상적 가치만을 고수한 셈이 되었다. 생물학 원리로 인간과 사회를 통섭(統攝)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 다른 분야와의 통섭(通涉)이라는 첫 번째 관문에 가로막힌 꼴이다.
우리가 상식처럼 물려받은 문과(文科)와 이과(理科)라는 정체불명의 학문 분류체계와 그 분류에 따른 소통 부재의 교육에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서양에서 수입된 이론을 비판 없이 수용 또는 배척하는 태도도 문제다. 결국 이 논쟁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생물의 이기적 속성을 중심으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사회생물학의 통섭(統攝)이 옳은지의 문제보다는, 과학과 인문학, 동양의 전통 학문과 서양과학을 어떻게 통섭(通涉)시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는 생물학 이외의 서양 학문에서도 꾸준히 있어 왔고 동아시아에서는 2000여 년 전부터 성선(性善)과 성악(性惡)의 논쟁을 비롯해 인간 본성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과학 논쟁 배후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꿰뚫어 보는 안목도 필요하다.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 국가들은 사회생물학과 비슷한 사회진화론으로 약소국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다. 과학은 엄청 유용하고 위대한 인간의 성취이지만 동시에 지배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분야를 넘나드는 논쟁이 필요한 것이고 논쟁을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이 논쟁은 생명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론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지만 이후 이루어진 현장 연구들에 의해 그 맥락이 크게 달라지기도 했다. 인간의 모든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히는 인간유전체 연구사업이 완성되면서 유전자가 모든 형질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무너졌으며, 자연 상태의 야생동물들도 서로 공감하고 협력한다는 증거가 축적되었다. 유전자가 생명의 유일한 결정 요인이 아니며 생명과 사회의 다양한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기적이지 않은 선택을 통해 생명의 경로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윌슨 교수는 말년에 평생 지지하고 기여해 온 유전자 중심의 이론을 버리고 다양한 수준에서의 선택 이론으로 전향하여 사회생물학 분야의 동료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누구나 이기적 본성에 따라 살다 보면 저절로 질서가 잡힌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 속에서 살아왔다. 크게 보면 사회생물학도 그 신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손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윌슨 교수가 말년에 입장을 바꾼 것도 보이지 않는 손의 따스함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냉철한 학문과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따스한 삶을 살다 간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