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커피는 보수동책방골목을 살릴 수 있다
부산 커피가 날로 쇄락해 가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살릴 수 있을까. 전국 유일의 헌책방 거리이자 ‘부산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보수동 책방골목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책방골목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커피로 힘을 모았다.
김성일 교사·초량 마리스텔라 커피
책방골목 지키려 커피로 의기투합
사회적 커피 ‘보수동 블렌드’ 개발
보수동 카페서 1잔 1000원 파격
모모스커피 개점 기념 헌책 나눔
커피·책 사연 시민 SNS 이벤트도
■책방골목 감성담은 ‘보수동 블렌드’
마리스텔라 커피는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에 동참하기 위해 ‘보수동 블렌드’를 내놨다고 4일 밝혔다. 마리스텔라 커피는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박성우·이정민 부부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부산 커피회사다. 부부는 카페와 SCA(스페셜티커피협회) 커피 랩, 바리스타 학원을 운영하면서, 보수동 책방골목 소식을 듣고 보수동 블렌드를 내놨다.
부산 중구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보수동 카페 2곳(보수마루북카페, 건강북카페)은 스페셜티 커피 보수동 블렌드를 1잔에 1000원, 100g에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마리스텔라 커피 박성우 공동대표는 “서부산에서만 40년을 살았기 때문에 초·중·고를 다닐 때는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참고서를 샀고, 대학 시절에는 절판된 책을 샀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책방골목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보수동 커피 블렌드를 내놨다”고 말했다.
이정민 공동대표는 “외국인 친구가 부산을 찾으면 항상 데려가는 곳이 책방골목”이라며 “보수동 블렌드를 만들면서 부산타워, 책방골목의 모습을 담은 패키지 역시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보수동 블렌드’는 에티오피아 다중 블렌드다. 에티오피아 농장 4곳의 스페셜티 커피를 섞어 유일하면서도 정겨운 보수동의 감성을 담았다. 부부는 SCA 공인 Q-Grader(커피감별사), SCA 공인 감독관으로 수많은 수상 경력과 국내외 심사 경력을 갖고 있다.
마리스텔라 커피는 ‘보수동 블렌드’를 사실상 원가에 가깝게 판매하고 있지만, kg당 발생하는 수익금을 보수동 책방골목을 살리는 데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달 24일 영도구 봉래동에서 로스터리&커피 바를 연 모모스커피는 이날 커피 바를 찾은 고객들에게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 차원에서 책방골목에서 산 헌책을 나눠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책방골목은 부산의 문화유산”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를 위해 ‘보수동 블렌드’ 개발을 제안한 이는 부산 중구 혜광고등학교의 김성일 교사다. 김 교사는 이 커피를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를 위한 ‘사회적 커피’라고 이름 붙였다.
김 교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보수동 책방골목을 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산의 여러 커피회사에 제안했다”며 “전혀 안면이 없던 마리스텔라 커피에서 취지에 공감해 주셔서 ‘보수동 블렌드’ 사회적 커피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지난해 중구 동주여고 재직 당시 동주여고 학생들과 힘을 합쳐 , 출간을 기획했다. 또 모교인 혜광고에서 일하게 되면서 혜광고 학생과 시민이 책방골목을 주제로 쓴 라는 제목의 시집을 지난달 출간했다. 이 외에도 보수동 책방골목을 주제로 학생들과 만든 단편영화,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부산시 시정협치 사업 예산 4000만 원으로 책방골목 입구에 ‘문학정거장’을 설치하는 사업을 기획했다. 김 교사는 “시민이 보수동 북카페에서 ‘보수동 블렌드’를 마시며 시를 써서 SNS에 올리면 문학정거장에서 시가 흘러나오도록 할 계획이고 6월께 설치된다”고 밝혔다.
1980년 대 후반 70여 곳에 달하던 보수동 책방골목의 책방은 4일 현재 31곳에 불과하다. 2020년 6월 서점 8곳이 팔려 현재 18층 높이의 오피스텔이 건립 중이다. 재개발 바람이 불어 지난해 10월에도 서점 3곳이 팔렸다. 책방골목 입구 도로변에 있는 우리글방은 내년 1월이면 임대차 계약이 만료돼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36년간 우리글방을 운영하는 문옥희 대표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국에서 유일한 헌책방 거리이자 지켜 나가야 할 문화적 유산”이라면서 “다시 엘피 판이 관심을 모으는 것처럼 사라지고 나서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 부산시와 중구청이 나서서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에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