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0. ‘암록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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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심플하고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은 각이 깔끔하게 잡히는 네모와 차분한 분위기의 셉그린(암록색) 컬러를 좋아하는 오 대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시멘트는 석회석과 점토를 분쇄한 뒤 가열해 만든 암록색 덩어리인 ‘클링커’에 석고를 더해 분말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많은 탄소가 나온다.’

이 기사들에 나오는 말 ‘암록색’은, 알고 보면 허깨비다.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많이 쓰일 법한데, 또 실제로 많이들 쓰는 듯한데 왜 사전에 없을까. 일단, 이런 말들을 보자.

‘백록색, 선록색, 암록색, 유록색, 적록색, 청록색, 초록색, 회록색.’

이것들은 모두 색깔 이름을 가리키는 색명인 듯이 보이지만, 이 가운데 ‘선록색, 암록색, 회록색’은 색깔 명칭이 아니다. 즉, 녹색 가운데서도 밝고 산뜻한 녹색(鮮-綠色), 어두운 초록색(暗-綠色), 회색빛을 띤 녹색(灰-綠色)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선녹색, 암녹색, 회녹색’으로 쓰는 것. 색명인 ‘백록색, 유록색, 적록색, 청록색, 초록색’은 ‘백록, 유록, 적록, 청록, 초록’으로만 써도 색명이다. 반면 ‘선록, 암록, 회록’이라는 색명은커녕 이런 우리말조차 없는 것. 그래도 좀 헷갈린다면, ‘선녹색, 암녹색, 회녹색’에는 두음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되겠다.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실낙원/복낙원’도 있다. 영국의 시인 밀턴이 지은 서사시 이름이 ‘실락원’이 아니라 ‘실낙원’인 것도 ‘失-樂園’꼴이어서 두음법칙을 적용받기 때문인 것. 해서, 속편 격인 ‘복락원’ 역시 ‘복낙원(復-樂園)’으로 써야 한다.

서기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나라 회계연도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여서 2022 회계년 역시 같이 밝았다. 한데, ‘회계년’은 ‘년’인데, ‘회계연도’는 왜 ‘년도’가 아니라 ‘연도’로 쓸까.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연도(年度): ①사무나 회계 결산 따위의 처리를 위하여 편의상 구분한 일 년 동안의 기간. 또는 앞의 말에 해당하는 그해. ②(흔히 일부 명사 뒤에 쓰여) 앞말이 이루어진 특정한 해의 뜻을 나타내는 말.(1차 연도./졸업 연도./제작 연도./설립 연도./생몰 연도.)

*년도(年度): (해를 뜻하는 말 뒤에 쓰여)일정한 기간 단위로서의 그해.(1985년도 출생자./1970년도 졸업식./1990년도 예산안.)

즉, ‘년도’는 해를 뜻하는 말 뒤에 붙여서 쓴다. 반면, ‘연도’는 띄어서 쓴다는 얘기. 그러니 본음 ‘년도’에 두음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다만, 전문 용어 띄어쓰기 규정에 따라 붙여 쓸 수도 있어서 저 위엔 ‘회계연도’로 적었으니 헷갈리지 마실 것.)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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